토머스 왓슨(Thomas John Watson)은 젊은 시절에 고향인 뉴욕 주 핑거레이크 부근의 농장지대에서 피아노 판매원으로 일했다. 그는 열심히 이집 저집을 뛰어다녔다. 그는 자신의 근면과 성실이면 틀림없이 실적보너스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되는 실패로 그 두 가지 자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왓슨은 피아노 세일즈를 그만둔 뒤 정육점을 개업했지만 가게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세일즈 실패와 사업 실패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왓슨은 당시 지명도가 높았던
지구 행성 택시를 운전하면서 같은 고객을 태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많은 지구 행성 택시 고객들 중, 같은 시간에 같은 고객을 태우는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다. 오늘 그 기적이 일어났다.출근하고 한 시간이 지나서 압구정동에서 지구 행성 택시를 찾았다. 막히는 길을 뚫고 어렵게 압구정동에 도착했다. 고객과 고객의 아이를 택시에 태우고 나니까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며칠 전 태웠던 고객과 고객의 아이였다. 나와의 두 번째 만남이라는 것은 티를 내지 못했다. 고객이 목적지에 내릴 때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는데, 고객도 나를 아는
27일째 날 : 흥이 있는 남자‘흥’하면 가수 홍진영이 떠오른다. 그녀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흥이 있다. 대학 축제에서도 똑같다. 항상 목소리 톤은 높고 얼굴과 몸짓은 밝고 크다. 흥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구 행성 택시에 탄 고객들 중에 가장 흥이 많은 고객을 태웠다. 고객을 태우러 가기 위해 전화 통화를 먼저 했는데 목소리가 좋았다. 부드럽고 낮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 마치 아나운서 같다. 고객을 만나 지구 행성 택시에 태우고 잠깐의 대화를 했다. 전화 목소리와 똑같다. 지구 행성 택시에 타는 고객들과 가끔
유재석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웃기는 아이였다. 반에서 오락부장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방송 출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웃기는 능력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 능력으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대학개그제’에 출전했다. 유재석은 이 대회에서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이 이 대회에서 대상을 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의 말에 의하면 이 당시부터 자신은 건방지고 오만했다고 한다. 이렇게 건방지고 오만했던 유재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상이 아닌 장려상을 받았다. 장려상으
"포토샵 크랙버전 어디서 구하나요?"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디자인공급소(이하 '디공소')에서 단골로 올라오는 질문이다. 다들 불법으로 쓰고 있다며, 아주 당연하게 물어보는 이 질문은 매우 불편하다. 이어서 다운받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현자들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는 구세주일지 모르는 이들은, 다른 이에게는 악이며, 최대의 적일 수밖에 없다. 모두 다 불법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써도 된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합리화 하여 자신이 악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평소에 방에서는 지적재산이 존중되지 못하는 현실을 통탄하며
26일째 날 : 연예인가끔씩 지구 행성 택시는 지구 행성 연예인을 태운다. 더 자주 태우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30살이 지나면서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 어떤 연예인이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 머리는 90년대 연예인에서 멈춰있다. 그러니 연예인을 태웠다 하더라도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영동대교 근처에서 지구 행성 택시를 찾는 고객이 있었다. 고객을 태우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그때까지 나는 고객이 누군지 몰랐다. 택시에 탈 때 살짝 얼굴을 봤지만, 고객에게서 들은 목소리가 “네”밖에 없었
오늘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다. 이 사실을 기사로 접하는데 나는 불편한 감정을 먼저 느꼈다. 그 기사에 이해를 돕는다고 실린 그림이 때문이었다. 일러스트로 되어 있는 그 그림은 두 여자가 서 있었는데,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지적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적을 받는 듯한 한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모습보다 그들의 복장이었다. 유니폼에 망을 한 머리, 그들은 누가 봐도 간호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간호사의 ‘태움’은 이제는 어지간한 국민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
일본의 요시노야는 규동(쇠고기덮밥)을 파는 집이다. 요시노야는 1899년 니혼바시 어시장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1926년 쓰키지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2년에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구멍가게였던 요시노야가 전국 체인망을 시작한 것은 1973년이다. 1975년에는 덴버에 미국 내 첫 지점을 열었다. 1978년에는 프랜차이즈를 포함해 일본 전역에 200개의 점포를 여는 규모로 성장했다. 2008년 9월 일본에 있는 규동 연쇄점 가운데 점포 수로는 두 번째고, 일본 외에 중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에도 점포를
25일째 날 : 상상은 발전이다역삼동에서 묘한 관계의 남녀를 태웠다. 둘의 대화와 행동을 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관계 같다. 대화를 듣고 행동을 보면서 어떤 관계인지, 남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여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상상해본다. 난 지구 행성 택시를 탄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항상 상상한다. 둘 이상 택시를 타고 대화를 한다면 드라이버는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다. 혼자 타고 가면서 전화 통화를 해도 마찬가지다. 들을 수밖에 없는 대화를 듣고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정리한다.압구정동에서 탄 고객은
1957년 아오키 히로아키는 19세 때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에 일본 대표 선수로 뽑혔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사진관에 가서 레슬링 복을 입고, 미국과 일본의 국기를 배경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우승을 했다."는 만족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가지고 "나는 기필코 챔피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아오키는 미국으로 출발할 때 영어도 모르고 돈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오키는 "걱정 마세요. 미국에는 달러가 길바닥에 널려 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