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가 올해 안에 법정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라고 요구하며 국회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정년 연장은 단순 고용정책을 넘어 국가 지속가능성 논쟁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문제는 이 사안이 노동계 요구만으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년연장은 고령층 노동권 보장과 생산성, 청년 고용, 세대 간 형평성 등 다층적 구조가 얽혀 있다. 이번 논쟁은 ‘고용의 길이’보다 ‘노동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황_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10년
한국의 법정 정년 60세는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2024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평균 법정 정년은 63.4세이며, 일본은 65세, 독일 67세, 프랑스 64세 수준이다. 정부는 2025년 6월 “2033년까지 단계적 65세 상향” 로드맵을 예고했지만 정치권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일괄 65세 전환을 요구하고, 경제계는 정년연장 대신 재고용 유연화를 제안했다. 청년층의 고용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국가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1월 이후 2025년 10월까지 청년 취업자 수는 35개월 연속 감소했다. 15~29세 취업률은 42.1%로 OECD 평균 46.8%보다 낮다.
정년연장의 경제학 생산성과 세대균형

정년을 65세로 일괄 상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 세대 교체 지연, 청년 일자리 축소라는 구조적 부작용이 예상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정년이 5년 늘어나면 기업 인건비는 평균 8.6% 증가하고 신규 채용은 3.2%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특히 정규직 중심 대기업에서 충격이 크며, 중소기업으로는 ‘퇴직 없는 고용 고착화’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계는 경험 축적의 효용을 강조하지만, 다수의 연구 결과는 생산성 정점이 평균 40~50세에서 나타난다고 제시한다. 연령 확대가 곧 숙련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연금·고용·재정의 3중 구조
정년 문제는 국민연금 개시 연령과 직결된다. 연금 수급 개시가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지면, 그 공백 기간의 소득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정책의 핵심이다. 정부 방향은 연금개시 상향과 고용유지 연장의 병행이지만, 노동계의 일괄적 정년연장 요구는 재정·고용정책의 연계를 흔든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보고서에서 정년연장이 국민연금 기금 지출 압력을 0.4%p 높일 것으로 추정했다. 재정 지속가능성 차원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일본의 정년 후 고용 모델
일본은 2021년부터 정년 65세와 함께 ‘70세 고용확보 의무’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이는 정년 자체를 연장한 것이 아니라, 정년 이후 재고용·위탁·자영업 연계를 병행하는 유연형 구조다. 일본 기업의 86%가 정년 후 재고용 방식을 택하며, 급여는 기존 임금의 70~80% 수준이다. 세대 간 고용 비용을 분산하면서 노동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논의는 이러한 중간모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선적이다.
정년연장특위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더불어민주당은 2025년 내 입법 추진을 예고했지만, 정년연장특위는 세대 간 형평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를 약속 불이행으로 규정하며 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문제는 이미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구조적 격차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중구조 상황에서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보호받는 고령 정규직과 취약한 청년층 간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 고용 감소와 기업 생산성 저하
지난 20년간 대기업 정규직 고령자 고용은 493% 증가했지만, 청년 고용은 1.8% 감소했다.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기술·서비스 산업처럼 혁신 속도가 빠른 분야에서는 고령화된 인력 구조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퇴직 후 재고용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노동계는 이를 고용 연속성 파괴로 보고 협상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는 재고용 모델이 세대 균형을 유지하면서 숙련 인력을 보존하는 절충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년 논의는 연령이 아니라 구조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를 단순 연령 확장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정년이 아니라 고용 형태의 다양성이 핵심으로 임금체계, 직무 재설계, 경력단절 대응이 병행되지 않으면 생산성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25년 보고서에서 “정년연장은 연금개혁과 직무급제 개편이 함께 이뤄질 때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제도보다 구조가 먼저라는 의미다.
지속가능성의 시선에서 본 정년 논의
양대 노총의 65세 정년 요구는 단기적 처방이 아닌 노동시장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다뤄져야 한다. 고령층의 생계보장도 중요하지만, 청년층의 진입 통로가 막히면 국가 생산성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정년연장은 연금·노동·복지 시스템의 정합성 속에서 점진적이고 탄력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단순한 정치적 보은이나 포퓰리즘적 접근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 노동시장의 미래는 연령이 아니라 유연성과 생산성, 세대 균형의 설계에 달려 있다. 결국 변화의 속도는 제도보다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참고자료
-고용정보원, 「연령대별 고용 구조 통계」, 2024
-한국노동연구원, 「정년연장 정책 효과 분석」, 2024
-기획재정부, 「연금·노동시장 연계 재정 보고서」, 2024
-OECD, 「Employment Outlook 2025」
-일본 후생노동성, 「고령자 고용확보법 시행백서」, 2023
-양대 노총, 정년 65세 연장 촉구 기자회견, 2025.11.05
[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