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고통의 재미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키워나가

작곡가라는 단어는 대체로 서양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작곡가들이 음악에 자신의 뿌리를 연결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었다.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은 일생을 민족적 소재를 탐구하는 데에 몰두했고, 일본 작곡가 다케미츠 토오루(Toru Takemitsu, 1930-1996) 역시 동양의 악기와 클래식을 접목한 독창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미와 서양음악의 만남은 어떨까. 한국투데이의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 '아티스트를 만나다' 네 번째 아티스트 클래식 작곡과 한국음악을 모두 전공한 작곡가 이서연에게 물어보자. 현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어린이극을 만드는 그는 국악 앙상블, 판소리 창작극, 서양 관현악 등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이서연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우리 시조시와 근현대 시들을 바탕으로 한 창작 정가(正歌) 작품들이다.

판소리는 익숙하지만 정가는 어딘가 낯선 독자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가 창작 앙상블 시작(詩作)의 대표이자 2022 국립 국악원 'Gugak in 人'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곡가 이서연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사진: 건반을 연주 중인 작곡가 이서연 Ⓒ 2021 photo_byone
사진: 건반을 연주 중인 작곡가 이서연 Ⓒ 2021 photo_byone

한국투데이(이하 한):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서연(이하 이):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저는 삶을 긍정하는 생각들을 제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작곡가 이서연입니다. 매 작품마다 주제는 다를 지라도 힘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일단 정가 창작 앙상블 시작(詩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시작은 이름처럼 시(詩)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고(作) 연주하는 정가 창작 앙상블인데요. 2020년부터 시조시를 가사로 노래하는 전통 가곡방식의 맥을 이어, 과거부터 현대까지의 좋은 시를 가사로 음악을 창작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가의 전통음악어법과 다양한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융합하여 새로운 음향을 만드는 것을 지향하는 팀입니다.

영상: 앙상블 시작(詩作)이 연주하는 겨울꽃(정호승 시, 이서연 작)

한: 저도 정호승 시인의 '겨울꽃'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앙상블 시작을 처음 접했는데요. 부끄럽지만 그 곡에서 처음으로 정가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습니다. 독자 분들에게도 정가에 대해 살짝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많은 분들이 판소리는 아셔도 정가를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우리 소리 중 가곡, 가사, 시조를 부르는 노래를 통틀어 정가라고 합니다. 정가를 부르는 사람을 가객(歌客)이라고 하구요. 판소리로 치면 소리꾼이죠.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고수와 같은 악기 연주자를 정가에서는 율객(律客)이라고 부릅니다.

한: 판소리와 비교하니 더욱 잘 이해가 되네요. 특별히 시와 정가에 마음이 가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좋은 시를 보면 장면에 대한 상상과 음악의 분위기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요. 시의 언어는 매우 섬세해서 단어 하나, 글자 하나까지 깊게 들여다보게 되죠. 또한 정가의 긴 호흡의 창법이 단어를 곱씹으며 시를 읽는 과정과 닮아있다고 느끼면서 시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저는 창작할 때 화성과 선율, 악기를 고려해 음색을 다루는 것에 몰두하는 편이예요. 원래 클래식을 공부했지만, 국악을 공부하면서는 리듬적인 부분을 확장하고 있구요. 편안하고 조화로운 음색을 구현하면서 리듬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제 음악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을 정가와 더불어 다양한 장르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영상: 고가신조를 작곡가 이서연이 편곡한 '샐별지자'

한: 클래식 작곡에서 국악 작곡으로 전향하신 계기가 있었을까요?

이: 사실은 대학 1학년 때 독일 유학을 준비했었어요.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었는데 제 은사님이신 작곡가 성용원 선생님께서 극구 말리시면서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떠나라고 해 주셨어요. 그렇게 결정하니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죠. 또 제가 무언가를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요.

공부하면서 20세기 이후 세계적인 작곡가들도 민족음악을 연구하여 작품에 활용한다는 것을 알고 한국음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필수로 국악을 공부하는 커리큘럼이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학부 재학 중 클래식과 국악을 둘 다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국악 작곡은 학위를 받지 않으면 제가 국악 공부한 것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았구요(웃음).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석사과정에 진학 했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전향이라기보다는 제 음악적 재료와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것이었어요. 해가 갈수록 여러 장르가 버무려진 곡들을 쓰다 보니 제 스스로 장르를 굳이 구분하지는 않고 있어요.

사진: 정가 창작 앙상블 시작(詩作) 왼쪽이 가객 조윤영, 오른쪽이 작곡가 이서연 Ⓒ 2021 SNAPTOV

한: 작곡가에게는 '영감'과 '뮤즈'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영감의 원천 또는 뮤즈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현재 시작(詩作)이라는 팀을 같이 하고 있는 조윤영 가객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목소리가 정말 맑고 청아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음색의 소유자시죠(웃음). 그 분이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창작 욕구가 불타올라요.

사실 많은 분들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현재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님이신 김성국 교수님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교수님께는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정신 등을 본받게 됩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신 교수님은 저의 석사과정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외국 작곡가 중에서는 프랑스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을 존경해요. 섬세하게 음표를 세공하여 작곡하는 그의 음악적 열정과 태도를 본받고 싶습니다.

한: 그런 여러 좋은 영향들이 작곡가님의 작품에 스며있겠네요. 특별히 기억나는 무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데뷔 무대가 생각나는데요. 국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진 무대였어요. 2017년 제 80회 조선일보 신인음악회에서 데뷔했습니다. 당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공연했었는데 이미 국악에 완전히 빠졌던 터라 대금, 거문고, 가야금을 위한 국악 실내악곡을 썼습니다. 사실 클래식 음대 졸업생들이 하는 음악회였던지라(웃음) 국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곡은 제 곡뿐이었습니다. 프로필 사진도 한복을 입고 촬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 국립국악원  'Gugak in 人' 프로젝트 촬영 중인 작곡가 이서연

한: 색다른 무대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올해 준비 중인 공연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이: 시작(詩作)의 앨범 발매 공연과 앙상블리안에서의 하우스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 공연은 정가와 하프, 피아노 편성의 곡들이 준비되어 있어요. 뮤직비디오도 나올 예정이예요. 조지훈 시 ‘낙화’와 김소월 시 ‘첫치마’, 여창 환계락의 ‘사랑을 사자하니’ 등의 곡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에 있는 앙상블리안 하우스콘서트는 2021 최우수 아티스트로 임하는 터라 작년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준비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릴게요.

한: 말씀을 듣다보니 작곡가 이서연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것 같은데요.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떨까요?

이: 음, 도전적인 음악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해보지 못한 시도들이 많아요. 무엇보다 저는 창작에 있어서는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는 엉뚱한 상상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일어나서 자기 직전까지 관찰과 더불어 여러 상상을 하고 가끔은 꿈에서도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언젠가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 무용, 기술 등 다른 분야까지 포괄하여 종합적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실험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아직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고 이를 활용한 작품들을 힘껏 만들고 싶습니다.

한: 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까를 어릴 때부터 생각했어요. 아주 어릴 때는 목청이 좋았기 때문에 노래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가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의문점을 갖게 되었어요. 의문점에서 점점 생각이 커져 어느 순간 작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의 고통과 재미를 맛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점점 키워나가게 되었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아서 이게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제 삶의 원동력인 음악을 오랫동안 전하고 싶습니다.


곧은 눈을 가진 작곡가 이서연과의 시간은 그의 말처럼 거침없지만 섬세했다. 시어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깊게 들여다보고 자신 안에서 치열한 고민을 거쳐 세상에 정성스레 내어놓는 이서연.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더욱 많이 알려진다면 우리 사회의 힘듦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영상: 앙상블 시작이 연주하는 고가신조 북천이 맑다커늘 X 어이얼어자리 (이서연 작)

 

작곡가 이서연

-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단과대학 수석졸업 및 총장상 수상

-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석사 졸업

- 국립창극단 창극 <춘향> 음악 조감독

- '악당' 작곡 및 건반

- 비파앙상블 '비화랑' 작곡가 및 건반

- 앙상블리안 최우수 아티스트 '시작(詩作)' 선정

- 한국컨텐츠진흥원 공연기술X라이브퍼포먼스 VR 진도씻김굿 '신곡' 제작

- 광주시립창극단 <적벽대전> 작곡 및 건반

- 국립국악원 Gugak 人 Project '시작(詩作)'선정

- 현) 창작정가앙상블 ‘시작(詩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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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신진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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