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에게 바이올린의 또 다른 말인 피들(fiddle)을 알리고파

바이올린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클래식을 생각하지만 의외로 실용음악 분야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연주자와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단어가 사용되나 국내에서는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면 '유진 박'과 같은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오늘의 아티스트에게서 그 답을 찾아보자. 한국 투데이의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 '아티스트를 만나다' 세 번째 아티스트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귀국 후 집시 재즈를 비롯, 월드 음악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윤예지이다.

언젠가는 재즈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재즈 피들러(Jazz Fiddler)'로 자신을 소개하고, 대중들에게 불리고 싶다는 아티스트 윤예지에게 재즈 바이올린과 피들이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사진: 재즈 바이올리니스트(피들러) 윤예지 (출처=버클리 음악대학)
사진: 재즈 바이올리니스트(피들러) 윤예지 (출처=버클리 음악대학)

한국투데이(이하 한):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예지(이하 윤): 안녕하세요. 저는 재즈 피들러 또는 피들러가 되고 싶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예지입니다.

한: 재즈 피들러라는 단어가 좀 낯선데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 피들(fiddle)은 바이올린을 부르는 또 다른 단어예요. 보통 클래식, 서양음악이 아닌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되는 단어죠. 저는 재즈, 아이리시(Irish) 음악, 플라멩코, 쌈바 등 매일 다양한 장르를 연주해요. 그런 절 가장 잘 정의하는 단어는 바이올리니스트보단 재즈 피들러가 맞다고 생각하구요(웃음). 사실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해도 아직 한국에선 전자 바이올린으로 대중음악을 연주한다고 많이들 오해하시더라구요. 제 목표는 피들이라는 단어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서 후배님들이 부연 설명 없이 재즈 피들러 혹은 피들러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한: 적어도 우리 독자 분들은 이제 바이올린과 피들을 구분하실 수 있겠네요. 흥미롭습니다. 원래는 연주 전공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연주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윤: 사실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으로 예중 입시를 준비했었어요. 6학년 때 좋은 기회로 공연하게 되었는데, 크게 와장창 망했습니다(웃음). 좋지 않은 말을 많이 들었죠. 그게 상처가 되었는지 심한 무대 공포증이 생기면서 바이올린 전공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성신여대 음악이론과에 진학했다가 우연한 기회로 버클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죠.

버클리는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개인레슨과 앙상블 수업을 들어야 해요. 녹음에 공연도 너무 많아 도저히 악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웃음). 그렇게 다시 연주를 하면서 재즈에는 실수가 없고 정답과 오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관객도, 나도 행복한 공연들을 만들어 가면서 무대 공포증을 이겨냈죠.

사진: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윤예지
사진: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윤예지

한: 실수와 정답이 없다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와 재즈 피들러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윤: 사실 클래식 전공자분들에 비해서 저는 기교적인 건 많이 부족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연주자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길을 돌아왔거든요. 저는 버클리 음대 보스턴 학사과정에서 Contemporary Writing and Production(작편곡)과 부전공으로 Video Game Scoring(게임음악)을 전공하고 스페인 발렌시아 석사과정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했어요. 실제로 귀국 후 잠시 광고회사에서 작곡가로 일한 적도 있구요. 그러다보니 작곡가, 프로듀서 분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죠. 음악적인 부분에서 창의적인 제안을 드릴 수도 있어요. 클래식과 달리 장르가 달라질 때마다 알맞는 톤을 위해 주법 자체를 달리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한: 그렇군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재즈 피들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텐데요. 현실의 벽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윤: 현실의 벽은 여전히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학교는 좋은 음악을 하는 법을 가르쳐줬지 내가 하고 싶은 이상적인 음악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았거든요. 또한 학교는 좋은 음악가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 내가 좋은 음악가임을 알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사실 실용음악을 전공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한국에서 아직 포지션이 애매해요. 우리를 세상에 알리는 홍보도 어렵지만, 사회가 저희를 활용할 방법을 모르기도 해요.

한: 그럴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재즈 피들러로서 현재 어떤 활동들을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윤: 일단 코르타도라고 하는 월드음악 밴드를 하고 있어요. 브라질, 쿠바, 멕시코 음악부터 미국의 재즈까지 다양한 월드음악을 저희만의 어쿠스틱한 편곡을 해설과 함께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있죠. 셋 다 버클리 음대 출신이라 공통점도 많고 나이도 비슷해서 재밌게 음악하고 있어요. 올해는 재단에서 주최하는 공연을 많이 했는데요. 강남문화재단(궁마을 음악회)과 인천문화재단(트라이보울)에서 주최한 야외 공연이 참 기억에 남아요. 저희는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공연해 왔는데 야외 공연은 가족 단위였거든요. 아이들이 곡과 악기 설명을 집중해서 경청하고, 연주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상하는 모습에 너무 놀랐어요. 감회가 새로웠어요.

사진: 윤예지가 활동 중인 월드음악 밴드 '코르타도'
사진: 윤예지가 활동 중인 월드음악 밴드 '코르타도'

한: 미국 버클리 음대라고 하면 세계적인 실용음악 명문학교로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있는데요. 특별한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 Berklee World String이라고 하는 현악 오케스트라가 기억에 남아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만돌린 그리고 하프로 구성된 다소 독특한 오케스트라죠. 투어 공연을 갔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우리 다 일어서서 하자!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첼로 파트를 제외 한  모든 단원이 일어서서 공연하게 되었어요. 구두 신고 다리는 아픈데 너무 신나고 재밌는 거예요. 관객들도 처음엔 정형화된 오케스트라가 아니어서 당황했지만 점점 다 같이 즐기게 되었죠. 꽤 자주 떠오르는 행복했던 기억이예요.

미국도 아직은 실용음악에서의 바이올린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악기에 비해선 체계적으로 정리된 교과서나 커리큘럼이 매우 부족해요. 그래서 독학으로 공부한 게 정말 많아요. 덕분에 티칭이 아주 많이 늘었죠(웃음). 제 대부분의 학생들은 클래식을 전공하고 실용음악에 도전하시는 현악기 연주자들이예요. 그러다보니 첼로, 비올라 가리지 않고 와요. 국악기인 아쟁과 해금이 오시는 일도 종종 있어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마다 저의 유학시절 스승님이신 John McGann 교수님을 떠올리는데요. 무대공포증에 떨던 저에게 용기를 많이 주셨었어요. 사실 지금도 학생들이 주저할 때 마다 이렇게 말해요. '음악에 틀린 건 없다고, 다 너의 음악이라고.' 교수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죠.

사진: 윤예지가 활동했던 Berklee World String,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윤예지
사진: 윤예지가 활동했던 Berklee World String,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윤예지

한: 음악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 인터뷰를 보고 많은 분들이 피들 음악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 같은데요. 추천 음악이 있을까요?

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블루그래스(Bluegrass)예요. 제가 이렇게 돌고 돌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이 장르로 활동하고 싶어요. 바이올린이 참 자주 등장하는 장르예요. 물론 이곳에선 피들이라고 부르죠. 스튜어트 덩컨(Stuard Duncan)과 알렉스 하그리브스(Alex Hargreaves)라고 하는 피들러들을 정말 좋아해요. 덩컨이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를 비롯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 한 <The Goat Rodeo Sessions>라는 앨범은 제가 앞으로 이런 음악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앨범이기도 해요.

영상: 앨범 [The Goat Rodeo Sessions] 중 Attaboy

한: 아티스트 윤예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피들 음악을 접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윤: 음, 일단 올해 남은 코르타도의 두 번의 공연을 잘 마치고 싶어요. 8월 7일, 8월 28일에 라틴음악과 브라질 음악들을 모아 준비하고 있어요. 장기적인 계획은 제 오랜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 컨템포러리 스트링 콰르텟(Comtemporary String Quartet)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해외에는 많은데 국내에는 아직 없거든요. 실용음악을 전공한 현악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테크닉, 음악적 요소를 보여드릴 수 있죠. 저의 역량이 많이 필요해서 조금씩 실험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독자 분들에게는 일단 피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부탁드리고 싶어요. 최근 방송 등을 통해 실용음악을 버스킹과 연관지어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버스킹이 낭만으로만 포장되고 재능기부가 당연한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조금 아쉬워요. 더불어 많은 분들이 저희가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놀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웃음) 아시겠지만 저희가 보여드리는 결과물은 사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예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매일 현실과 싸워가며 각자의 동굴 안에서 연습하고 공부하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그 마음을 알고 공연을 봐주신다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아직 피들(fiddle)의 불모지라고 볼 수 있는 한국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이 될 재즈 피들러 윤예지와의 시간은 유쾌하지만 진중하고, 많은 것이 담겨있는 시간이었다. 윤예지가 많은 분들에게 피들의 매력을 알리고 머지않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피들러라는 단어를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영상: 윤예지가 활동하는 코르타도의 Um a Zero

 

재즈 바이올리니스트(피들러) 윤예지

- Berklee College of Music 학사 및 석사 졸업 (장학생)

- ‘현악기 즉흥연주법’ 저자

- 2021 서초문화재단 문화공간 활성화 사업 (해설과 함께하는 세계 음악 여행 시리즈 I / II)

- 2020 화성시 The H Concert, 용인 포은아트홀 토요 키즈 클래식 시리즈

- 2019 지하철 1호선 뮤지컬, 한성백제문화제 수변음악회, 서초 실내악축제 등 참여

- 2018 Valencia Musaico Festival, 라이브 클럽 데이 축제

- 마드리드 국립 음악당, 보스턴 심포니홀, 발렌시아 오페라 하우스 등의 다양한 공연장에서 연주

- 2014 ASTA (American String Teacher Association) String Quartet Competition Honorable mention

관련기사

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신진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저작권자 © 한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