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 꼬박 10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때는 그 회사가 내 삶의 전부였고,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그 회사라는 착각 속에 살았었다. 아이를 낳고 입덧이 심해 회사를 관두게 되고, 아이가 4살이 되는 지금까지 육아맘으로 살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세상은 넓다” 라는 것. 오히려 아이를 낳기 전, 퇴사를 하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었고, 내가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보지 않으려 했던 세상들도 이글이글 여기저기서 타오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달콤한 신혼 생활도 잠시, 나는 지독한
우린 학교에서 답만 찾고 답만 말하며 살았다. 정작 성인이 되어 나 자신 의 인생의 답은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인생에 질문하고 싶다. 답에는 나 자신 이 없지만, 질문에 나 자신이 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회에 익숙하지 않기에 질문을 싫어하고 꺼린다. 학교에선 지식을 가르쳐 답만 요구된다. 그 답엔 지 혜가 없다. 나에겐 인생수업이 필요했다. 인생엔 지식이 아닌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질문 속에 지혜가 요구된다.질문을 잘 못 하는 것도 병이다. 말하고 싶은데 말 못 하는 난 거의 중증 일 정도이다. 자존감이 낮아서 마음속에 수많은 질
아무튼, 그날 칼 퇴근을 하고 용산에서 급행을 타고 인천으로 슝 달려갔지 그리고 집 근처에 횟집이 오픈을 했더라고, 거기서 연어 회에 소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근데 신랑한테 전화 한 통이 왔어시어머니더라고 신랑은 누구 전화든 다 내 앞에서 그냥 받아, 시어머니 전화 같은 경우는 스피커폰도 많이 하고. 아! 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겁나 자주 아들한테 전화를 하시더라고 아무튼 전화가 왔어 시어머니한테. “아들!”“어 엄마”“너네 삼촌 집 리모델링 한다는데 도배 값 보태라고 나 200 너 200 해서
칼럼을 연재하면서 시댁 갈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며느리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씩 들어보자면, 구구절절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연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꼽자면 바로 ‘말’이다. 고부 사이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말’일 것인데, 고부사이에서의 ‘말’의 갈등은 보통의 하루에서 겪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상으로 심장을 파고 든다.‘말’에 관한 사연을 쭉 들어보자면, 일관적으로 공통된부분이 보인다. 바로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이 불행해 지지 않도록 부부는 항상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부모부터 배우자를 지키는 일이다. 시댁갈등이든 장서갈등이든 결혼을 했으면 부부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패막이 되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을 하면 대리효도를 바라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효자라는 허울좋은 핑계로 배우자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잦은데, 본인들은 정작 이것이 대리효도를 강요하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효도는 각자 부모님에게 각자 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에게
우리나라 ‘결혼문화’는 허례허식이 많다. 여러가지 보여주기 식 ‘결혼문화’중 하나가 바로 남자가 집을 해오는 것이다. 왜 남자가 집을 해야 하는가?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조선 중기 유교사상이 들어오면서 여자들의 인권이 낮아지고, 그러함으로 인해 결혼이라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것이 남자가 집을 해야 한다는 결혼문화의 시발점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식도 그에 맞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악습
시댁 갈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부터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원인들이 있기에, 갈등이 시작되고 나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오늘은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 결코 사소하지 않으나, 너무도 많은 며느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들이기에, 결코 사소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남겨보고 싶다.내 아들 아침밥은 차려 줬는지? 반찬은 뭐 해줬는지? 저녁은 뭐 먹었는지? 집안 청소는 제때 하는지? 아들이 번 돈 아껴 쓰는지? 이 모든 것들이 궁금해서 안
시댁과 가까이 살고 있나요? 혹은 친정과 가까이 살고 있나요? 고부갈등과 장서갈등에 놓여 있다면 이 문제부터 즉시 해결을 해야 한다. 거리적인 간격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신적인 간격 또한 개선하기가 어렵다.첫번째 가까우면 자꾸 눈에 띈다.이것은 당연지사이다. 나의 생활반경 안에 늘 보이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가족이나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나와의 거리적인 거리가 가깝기에 자꾸 눈에 띄게 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그들을 피할 수가 없다. 그들 중에서는 나와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운 사람도 있고,
고부갈등, 시댁갈등의 중심에는 항상 남편이 있다. 정말 ‘남의편’ 인가 싶을 정도로 무심하게 그 중심에 서 있을 경우,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배우자 중심에 바르게 서 있어야 할 본인이, 중심을 벗어나 있거나 방관하고 있을 경우, 결국은 이 모든 경우의 수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내 삶까지도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정도로 고부갈등은 삶의 방향과 삶의 질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큰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남편분들에게, 오늘은 문제를 똑바로 들여다보기를 정중하게 권해 보려고 한다.첫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많이 변해도, 며느리의 위치는 제자리 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고려시대 때만 해도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 유교사상이 들어오면서 여성의 지위는 점차적으로 낮아졌고, 여성의 지위보다 낮아진 것이 며느리의 지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며느리의 대우는 처참했다. 반만년의 한국사에서 조선시대는 고작 500년일 뿐인데, 힘으로 누르고 통제하려고 하는 힘은, 시간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아직도 아들을 낳으라는 시댁이 있냐?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필자가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