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국군 포로 또 한 명 별세…‘잊힌 영웅’들이 떠나고 있다

▲귀환 국군포로 유공자들이 20일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군포로 전시실' 개막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2024.6.20
▲귀환 국군포로 유공자들이 20일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군포로 전시실' 개막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2024.6.20

6월 2일 새벽, 또 한 명의 국군 전쟁포로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는 이날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뒤 탈북해 귀환한 국군 포로 A씨가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고인의 신원은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됐지만, 그의 죽음은 국가와 국민이 지켜주지 못했던 또 한 명의 ‘잊혀진 영웅’을 이 땅에서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로써 국내에서 생존해 있는 국군 포로는 단 6명으로 줄었다. 한때 8만 명이 동원되어 싸웠던 전쟁터에서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 약 8천여 명이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됐던 가운데, 2000년대 이후 탈북을 통해 귀환한 국군 포로는 손에 꼽힌다. 현재까지 자유를 되찾아 귀국한 국군 포로는 총 80여 명에 불과하며, 대부분 고령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워진 전우’로 살아온 시간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이규일(가운데) 씨. 2022.8.12 [사단법인 물망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이규일(가운데) 씨. 2022.8.12 [사단법인 물망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름 없는 A씨는 1951년 강원도 양구지구 전투에서 실종된 국군 병사였다. 그는 그 이후로 수십 년간 북한에서 강제노동과 정치적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6·25가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철조망을 넘은 그는 비로소 조국의 품에 안겼지만, 국가는 그를 충분히 품지 못했다.

탈북한 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70~80대 이상의 고령이며, 국내 송환 이후에도 낮은 연금과 복지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국방의무를 다했음에도 정전협정 이후 귀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도 밖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국방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국군 포로 귀환자들에 대한 예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고, 2018년부터는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공식 인정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정서적·법적 보상에는 한계를 지닌다.


이종섭 장관 대행, 조문으로 예우…그러나 늦은 감 아닌가


고인이 머물렀던 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두희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조문을 다녀갔다. 국방부 역시 공식 애도 메시지를 냈고, 유가족에게 조화와 위로를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들을 더 빨리 품지 못했나”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생존 국군 포로는 이제 6명뿐이다. 대부분 건강이 악화된 상태이며, 언론이나 정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이미 수십 년을 조국 밖에서 고립된 채 살아온 이들에게, 우리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마땅한 예우와 역사의 자리 마련이다.


국군 포로는  ‘과거’가 아닌 ‘통일 이후’의 상징


국군 포로 문제는 단지 전쟁의 유산이 아니라, 분단과 이산 그리고 통일 이후 사회통합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북한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살아온 경험은, 체제 전환 이후 북한 주민들이 겪을 현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의 귀환과 정착 사례는 곧 미래 통일 한국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체류 국군 포로가 북송되는 사례도 있고, 상당수는 자력 탈북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국군 포로가 2024년에도 존재하는 것은 국제 인권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북한 정권의 강제 억류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촉구하고 있다.


대선 후보·정치권, 이들에 대한 철학과 말 있어야


다가오는 2027년 대선을 준비하며 어떤 정치 세력도 ‘국군 포로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지 않고 있다. 안보는 말하지만, 안보를 위해 싸운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것이다.

더 이상 이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 생존자 6명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기 전,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에게 남은 생을 국가적 자긍심 속에 보내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를 위해 싸웠던 사람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 하나 정도는 대한민국이 지켜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젠 기억을 넘어, 제도로 보답할 차례


고인의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은 조용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해 조용해서는 안 된다. 1명씩 줄어드는 생존자 숫자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이들에 대한 국민적 기억과 역사적 의미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모든 국군 포로가 조국의 품에서 존엄하게 마지막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예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은 그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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