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시행 중인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상속세 납부가 법제화된 이후 최초로 미술품으로 상속세 납부 사례 보고

▲ 사진: 국내 최초의 미술품 물납제를 인정받은 작품 4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 사진: 국내 최초의 미술품 물납제를 인정받은 작품 4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2023년 1월 2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문화유산이나 가치가 인정된 미술품으로 세금 납부가 가능한 물납제가 법제화된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인 지난 10월 8일, 최초의 물납 미술품으로 상속제를 납부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 미술품 물납제란
'물납제'란 현금이 아닌 다른 자산을 정부에 넘기고, 그 자산의 가치만큼 세금을 납부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세제도이다. 국내에서 물납제로 세금을 대신 납부할 수 있는 재산의 종류의 한정적이다. 부동산, 주식, 국채, 상장 유가 증권, 비상장 주식, 토지 등이 포함되지만 미술품은 물납제 재산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재산으로서 미술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20년 1월,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삼성가에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4개월 안에 상속세를 납부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고, 그 당시 삼성이 보유하고 있던 고가의 미술품을 경매로 판매하여 세금을 납부할 현금을 마련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치가 높은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한 물납제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020년 5월, 재정적 어려움으로 납부해야 할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한 간송미술관은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놓았다.

한국의 역사적 보물이 경매에 나왔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고, 다시 한번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오랜 논의를 거쳐 상속세법 개편이 이루어졌고, 2023년 1월 1일부터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이 넘는 경우에 한 해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납부하는 물납 특례 조항이 시행 중이다. 

▲ 사진: 국내 최초로 상속세 물납허가를 받은 쩡판즈의  2점  출처:  K옥션 (2007) 
▲ 사진: 국내 최초로 상속세 물납허가를 받은 쩡판즈의 2점  출처:  K옥션 (2007) 

▶ 10월 8일, 최초의 미술품 물납 사례 나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최초로 물납 미술품 4점이 8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에 반입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물납 신청된 작품은 총 10점으로 그 가운데 4점이 최종적으로 물납 허가를 받았다.

서초세무서가 물납제 신청 내역을 통보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및 민간 전문가 7명으로 꾸려진 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심의위원회는 물납을 신청한 10점의 작품 중 예술적 가치와 활용도, 보존 상태 등을 전반적으로 심사하여 4점의 물납 필요성을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물납 허가를 받은 미술품은 쩡판즈(Zeng Fanzhi)의 <초상화(Portrait)>(2007) 2점과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을 맡았던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 이만익의 <일출도>(1991), 미술시장의 브루칩으로 불리는 추상 미술의 거장, 전광영의 한지 조각 작품<집합(Aggregation)>이다.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 중 1명으로 꼽히는 쩡판즈의 작품 2점은 지난 4월 케이옥션 경매에 나올 예정이었으나 경매 직전 출품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물납을 통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으로 쩡판즈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고, 함께 반입된 작품들은 상태 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되어 향후 다양한 전시에 활용될 예정이다.

▲ 사진: 프랑스의 피카소미술관 컬렉션은 미술품 물납제 도입으로 크게 성장했다.  출처: 피카소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 사진: 프랑스의 피카소미술관 컬렉션은 미술품 물납제의 영향으로 크게 성장했다.  출처: 피카소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 미술품 물납제의 의의 
프랑스는 1968년 세계 최초로 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하였고, 오랜 기간 관련 법률을 시대에 맞게 다듬으며 이어오고 있다. 작품 물납 과정은 투명하고 간단하며, 물납이 가능한 작품의 종류도 미술품, 고서, 수집품 등으로 다양하다.

선진화된 물납제도의 시행 덕분에 프랑스는 정부 예산 만으로는 구입하기 힘들었던 고가의 미술품들을 국가 소유로 확보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외에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같은 문화 강국에서는 이미 물납제를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되면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소중한 문화유산이 경매를 통하여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극소수만 사적으로 향유하던 작품들을 공공 자산화하여 국공립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전시함으로써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상속세는 물론 증여세, 보유세 전반에 걸쳐 미술품 물납이 가능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상속세'에 한해서만 미술품 물납제를 운용하고 있다. 한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물납제 시행으로 인한 세금 징수에서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피상속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정부에서 물납제도를 통하여 세금을 좀 더 용이하게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술품 물납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 
미술계에서는 최초의 미술품 물납 사례를 환영하면서도 공정한 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미술품 물납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납세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좋은 작품'의 물납이 장려되어야 한다며, 애매한 작품은 오히려 불필요한 관리 비용만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미술품 물납제의 가장 큰 쟁점은 역시 '가치의 평가'다. 특히 문화재는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전문가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재위원회급의 권위와 전문성을 갖춘 '물납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해당 작품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문체부 장관의 재가를 거쳐 최종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립하였으며,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각각의 케이스마다 달리 선임하여 평가를 진행한다. 

또한 현금 납부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탈세의 수단으로 미술품 물납제를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일각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 외에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액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의 가치를 최대한 낮게 평가하여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 했으나, 미술품 물납제의 시행으로 인해 반대로 평가 금액을 부풀려 상속세를 줄이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제도 시행 후 1년 여만에 첫번째 사례가 나온 상황에서 제도 시행에서 발견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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