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_ 디자인하는 사람들

역삼동 작은 건물 5층, 텅 빈 공간에 홀로 서 있다. 벽을 따라 줄자로 거리를 잰다. 기둥과 보, 좌측과 우측, 위와 아래의 치수를 확인하고 설비의 오수와 배수 위치, 전기의 분전함을 파악한다. 실측한 모든 내용을 준비된 종이에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진을 찍어둔다. 사무실로 가는 내내 머릿속은 텅 빈 공간으로 가득하다. 현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디자인은 시작된다. 

사무실로 들어오니 날이 저물었다. CAD로 실측한 것을 정리하고 퇴근길에 나섰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지하철 안은 한산하다. 머릿속엔 오늘 그린 도면에 무엇을, 어떻게 그려 넣을지만이 떠오른다.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아 노트를 꺼내 그려본다. 소용없는 일이다. 내일 생각하기로 다짐하고 피로의 무게를 받아드린다. 먼 길이기에 충분히 잘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8시에 출근해 소비자가 요청한 자료를 다시 한번 살핀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지만, 소비자와 공간에선 벗어나지 않는다. 동료들이 출근한다.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에 모여 어제 다녀온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디자인 방향이 잡힌다. 

[사진출처] Unsplash
[사진출처] Unsplash

 

요란한 키보드 음, 마우스의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좌우 모니터로 옮겨진다. 머리가 시야를 따라 흔들거린다. 소리와 움직임에 리듬이 있다. 여기서 두둑 딸깍, 저기서 두둑 딸깍, 머리가 흔들흔들. 점심시간이다. 리듬이 깨지는 게 싫어 식사를 거르고 싶다. 밥은 먹고 하라는 팀장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란다. 밥을 먹지만 머릿속은 리듬을 타고 있다. 머리 굴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나 보다. 일 잘하는 사람은 때를 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리듬을 타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영감의 욕망은 생각을 부르고 창의력은 생각에 집중한 시간과 비례한다. 생각 욕구와는 다르게 상사와 전화는 때를 모르고 나를 부른다. 역시 한낮에는 일하기가 어렵나 보다. 

어둠이 내리고 사무실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마음이 차분해지며 집중도가 높아진다. 다시 리듬이 살아나고 눈에 힘이 들어갈 즈음, 저녁 먹고 하잔다. 저녁 8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자료를 찾으며 리듬을 탄다. 일에 속도가 난다. 밀려오는 잠을 정신력으로 버터 보지만 역시 에너지 드링크제가 효율적이다. 잠을 포기하더라도 지금의 리듬을 깨뜨릴 수 없다. 몇 개를 더 마셔본다. 두 개의 모니터를 보기 위한 머리의 움직임. 은은한 흔들거림과 잠을 깨기 위한 격한 흔들림이 교차한다. 지나가는 음악 소리. 어두운 밤, 환하게 밝은 사무실에선 두드리고 누르는 소리만이 요란하다.

천지창조, 신은 6일간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바다와 해와 달 그리고 생명을 만들고 7일째 안식일을 가졌다. 공간 디자이너는 공간창조, 회색의 차가운 콘크리트 안에 벽을 디자인하여 새로운 공간과 길을 계획한다. 천장을 만들어 내부의 효율을 높이고 흉한 것을 가려 아름답게 막는다. 빛을 내부에 들여 사람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게 하고 태양이 온 세상을 밝히듯 조명으로 모든 공간을 비추게 한다. 물을 공급하고 오물을 배설하게 하고 공기 흐름은 물론 온도를 조절하여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공간 디자이너는 오롯이 사람,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한다. 신이 아닌데도 쉬지 않고 신과 같은 소비자의 성향과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자신의 오감과 경험, 배움 모든 것을 끌어올려 공간을 계획한다. 그들은 사람이 생존해야 할 모든 행위를 해야 하기에 더욱 생각할 수밖에 없고 생각해야만 한다. 예산에 무릎 꿇고 상황에 포기하며 시간에 쫓긴다. 어쩔 수 없음에 지나가 버림은 언제나 그들을 처벌한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한다. 두렵기에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다. 공간 디자이너의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빠르게 가버린다. 돌아오지 않는 삶의 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공간은 그렇게 디자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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