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독한 말을 많이 들어서 의욕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회복하는데 상 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독한 말을 쏘아붙일 때 “닥쳐”라고 하지 못했다. 맞서기가 두려웠 기에 나쁜 표현을 계속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주고 들어주는 친 구가 바로 글쓰기가 되었다. 글로 “닥쳐”를 쓰고 “그만해”를 수없이 털어놓 으며 써 내려가면 “넌 잘하고 있어”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친구가 되었다. 과도한 행동으로 아픔을 숨겨온 것도 다 털어놓게 되니 감정을 덜어내는 글 쓰기로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용기 있는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한테 집 중해주는 사람을 보게 되어있다. 긍정적인 글은 긍정의 힘으로 용기를 갖게 해준다. 부정적인 글은 절대 쓰면 안 된다. 나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에 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 덜어내는 글쓰기 법칙만 따른다면 습 관이 되어 제대로 무게를 덜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쓰는 대로 사람은 생각하 고 그것만 보기 때문이다.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글을 써야 한다. 흔들리는 마음으로 힘들 때 나에 게 격려한다. 그러고 나면 보물 같은 에너지와 활력이 생겨 흔들리지 않는 마 음으로 바로 잡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몸이 강한 것이 아니라 정신력 이 강한 것이 진정한 맷집이다.

불운으로 시작된 만남이 있었기에 감정을 덜어내는 습관을 키우게 되었 다. 화내지 말고 관심 갖지 말고 어차피 일어난 일을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내 감정에 의심하는 순간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었다가 하였다. 의심은 앞 으로 나가는데 1할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 마음이 떠나있었기에 상처로 남은 배신에 대한 그런 걱정은 나에겐 사치일 뿐이었다. 누가 잘못했는데 내가 이 렇게 그들에게 애원해야 하는 건지 슬픔이 밀려왔고 막상 알았을 때 그곳은 이미 전쟁터였다.

불행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모습으로 엄마 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해 집안에 보탬도 되지 못하는 원 망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실패한 패배자의 모습을 보이며 빈손으로 집으로 가서 가족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을 것 같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한 줄기 빛과 같이 그늘에서 살짝 비춘 햇살이 살아낼 용기를 생기게 하였다. 용기를 갖는 것만으로도 걱정을 덜고 감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빚을 경험하지 않다가 빚을 접하니 어디 가 시작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불행과 행복은 남과 비교할 때 불행하기만 했다. 한없이 남과 나를 비교 하는데 시간을 쓰고 괴로워하고 내가 고작 한 것이 한심한 내 모습을 한탄하 는 것이었다. 남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었다.

나에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남과 비교하고 살 거니? 이제부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비교해”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보다 잘 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므로 불행하다고 여길 때 나와 비교하면 한없이 초 라한 나만 있었다. 내가 행복하다고 만족하여도 또 다른 큰 행복 앞에 비교되 면 작게만 느껴 그 행복도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와 나를 비교할 때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비교하면 그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드는 데 집중하 게 된다고 했다. 나를 바꾸는 건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할 때 어제보다 나 은 오늘이 온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반드시 티가 난다.

나는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숨기지를 잘 못 한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주변 사람들이 안다. 이렇게 난 예측 가능한 사 람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날 예측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가족의 응원보다는 늘 반대에 맞서야 할 땐, 그들로 인해 가슴이 저릴 때도 많았다.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크든 작든 조언의 이름으로, 조언자의 뜻대로 움직 여줄 것을 강요받았다.

선택은 나에게 있는 것인데 결국 강요로 제압당해 버린다. 그렇다고 강요 로 인한 책임은 져주지 않는다. 서글프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주어 지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영역이라, 마음속으로 파동치는 요동을 느 껴도 내 몫이다. 내 의지를 개입시키지 못한 비겁한 소리뿐이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불편하지 않다. 내가 살맛 나게 살아야 가족을 살맛 나게 하고 나의 행복 안에 가족의 행복 이 있다. 나의 행복은 가족이 있기에 존재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 한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하면 자연스레 가족도 나를 보게되고 인정한다. 가족으로 힘들어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다. 나처럼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며 진정성을 담아 말해주면 듣는 눈 빛으로 따뜻함을 보내준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 대화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고 나면 온기가 전해진다. 원하지 않으면 그 변화는 안 온다.

내가 글을 쓸 때 생각하지 않는 건 전문 용어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이 다. 그것에 맞추려다 보면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내 가 글에 끌려다니는 꼴인 글이 되어 버리는 것이 싫다. 감정에 충실하고 다 쓰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기를 위한 글쓰기만 한다. 아무리 덜어내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덜어낼 감정이 눈에 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다.

매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덜어내는 글쓰기는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한 사람들은 일 처리가 투명하다. 그렇기에 결과물이 일정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감정이 생길 때면 각자 생 존 방법이 있다. 누군가는 눈 감아 버리는 방법으로, 누군가는 나를 희생시켜 모두 잘 지내게 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는 부딪혀서 해결을 찾는 방법으로 각 자 나름대로 다양하다.

감정을 덜어내는 글쓰기를 준비하는 순서는 큰 것부터 덜어낼 상대를 잡 고 그것으로 파생된 일들의 가닥들을 하나로 정리한 다음 어떻게 쓰면 나에 게 좀 더 쉽게 덜어낼 수 있을까에 관련된 생각들을 준비하고 써 내려가면 그걸로 끝이다. 내 마음에 있는 흑색을 흰 종이에 옮겨놓는다. 아무것도 없었 던 흰 종이엔 나의 감정들이 흑색으로 물들여진다. 그러므로 감정을 덜어내 는 글쓰기는 나의 거울과 같다.

글을 잘 써보려고 온갖 기술을 부린 글보다 나는 한 사람이 내려놓은 한 사람이 품은 글이 좋다. 한 사람을 품은 글로 누군가는 위로를 받는다. 요즘 은 나를 대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글은 외부 정보로 인해 알고 있는 글이 아닌 느낀 사실을 쓴 글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균형을 안 깨기 위해 그 사람 입맛만 맞춰주는 끌려가는 삶을 살았던 내가, 육체와 정신이 균형이 맞아야 삶이 지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다고 퍼져있어도 누구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기에, 얼른 감정을 다스려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상대방의 태도를 내 방향으로 오게끔 원하는 건 욕심이다. 상대방의 중심은 이미 내 방향이 아니 다. 그렇다고 눈도 막고 귀도 막고 일방적으로 회피해버리는 태도로 벽을 만 들면 안 된다. 감정의 중심에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적게 되면 미숙함이 보인다. 내 마음을 덜어내는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이다.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무너진다. 중요한 건 균형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덜어내는 글쓰기 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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