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의 단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벌을 받고 땅에 내려온 미하일이라는 천사가 한 구두수선 집에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건장한 군인 장교가 최고급 가죽을 가져다주면서 구두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처음 신어도 십년을 신은 것같이 편안하고, 십년을 신어도 새 것 같은 구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구두수선공은 그런 신발을 만들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그 집 종업원으로 와 있는 미하일이 자기가 만들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주인은 미하일의 솜씨를 알기에 최고급 가죽을 받아 미하일에게 신발을 만들도록 맡겼습니다.

그런데 미하일이 그 좋은 가죽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슬리퍼를 다 만들었을 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열고 보니, 조금 전에 건장한 군인 장교와 함께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 양반, 이제는 구두가 필요 없게 되었소. 우리 장군께서 신발을 맡기고 가던 도중에 갑자기 말이 날뛰는 바람에 말에서 죽고 말았소. 그러니 이제 죽은 그분에게 신길 슬리퍼나 만들어 주시오.”

이 소설에서 천사 미하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세 가지 수수께끼 가운데 두 번째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사람에게는 내일을 알 수 있는 능력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세 가지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잘못은 하나님 없이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하고 설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별로 필요 없는 분처럼 취급당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데,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그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말은 비록 짧은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이나, 무엇을, 그리고 왜?’ 라는 일반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방법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계획에 한 가지가 빠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빠져 있습니까?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는 일은 위대한 것입니다. 꿈도 있고 목표도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이나 목표에,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세운 계획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도우심을 청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운다면 그 계획은 곧 허물어질 망대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계획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계획에 중요한 결정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127:1, 잠16:9)

15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정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언제나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저렇게도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주님의 뜻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주님의 뜻이라면’ 이라고 물어본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합니다.

두 번째 잘못된 태도는 내일을 내 마음대로 예측하고 헛된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추측하고 예상한대로 내일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14절과 16절에 보면 내일을 내 마음대로 예측하거나 내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살던 시대에 애굽 사람들은 항상 풍년일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땅에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7년 흉년이라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꿈을 통해 계시해 주셨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면서 흉년을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2)우리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안개는 새벽에 잠깐 피었다가 아침 햇살이 쬐이기 시작하면 금새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 인생은 짧습니다. 짧은 인생 내일의 일까지 걱정하고 염려하지 말고, 오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내일을 예측하지 말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우리는 내일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계획을 세운 내일이 우리에게 희망적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언제나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오늘 해야 할 일을 결코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내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다른 것은 다 미룰 수 있어도 미룰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생명 주어진 기간 동안에 더욱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특별히 선을 행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오늘 선을 행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져 있음에도 내일로 미루고 하지 않으면 죄’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오늘 할 수 있는 대로 가능하면 많이 선을 베풀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흔히 ‘법을 지키지 않는 것만 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다른 사람을 속여서 사기를 치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법을 어기는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드려야 할 때 예배드리지 않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봉사해야 할 때 봉사하지 않고, 선을 행해야 할 때 선을 행하지 않는 것, 그것도 죄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알지 못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이웃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내 마음대로 예측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늘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그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시는 그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정성과 재물과 더 나아가 우리의 온 인생을 투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오늘의 축복과 내일의 약속으로 우리의 삶에 넘치도록 갚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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