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꿈도 없이 사는 인생은 언젠가 허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

16일째 날 :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늦은 오후, 서초동에서 고등학생 두 명을 태웠다. 목적지는 대치동 학원가다. 지구 행성 택시에 탄 두 녀석은 입으로는 게임 얘기를 하는데 눈과 손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오늘 해야 할 숙제를 아직 못 한 모양이다. 아이들의 힘든 일상이 느껴진다. 

난 고등학교 다닐 때 노는 아이였다. 학교는 잠자고 밥 먹으러 가는 곳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긴 했지만 딱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그렇게 학창 시절이 끝나고 첫 직장을 다니고 나서 대학에 가야 되겠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결국 2년간의 사회생활을 끝내고 10개월 동안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팽팽히 놀았던 실력이 10개월 만에 월등히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어찌하여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고단함은 이 나라만의 특징인 것 같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다시 콜을 받아 서울을 돌아다니다가 밤 10시 다시 대치동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치동 사거리 학원가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인도에는 학원 건물에서 몰려나온 아이들, 교통경찰과 모범택시 기사들의 수신호와 호루라기 소리, 차도에는 아이들을 태우러 온 자동차들과 지나가는 차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대치동 학원가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겨우 대치동을 빠져나오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단 말인가? 아이들뿐인가? 부모들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고생한단 말인가? 아직도 대한민국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기에는 이 사회가 아이들과 부모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다리는 성공할 수 있는 계층 간의 이동 수단이다./출처:픽사베이

요즘 사용되는 용어 중에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 있다. ‘사다리‘라는 것은 계층 간의 이동 수단을 말한다. 예전에는 소득의 하위 계층이 사다리를 타고 중위 계층으로 올라가거나 중위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위 계층인 기득권에서 이런 사다리를 없애버려서 사다리를 타고 상승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다리 걷어차기‘다. 대표적인 예가 사법고시다.

이렇게 사다리를 많이 없애버리자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려고 더욱 애를 쓰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잘살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은 당연한데 그걸 막아버리면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기를 쓴다. 또 위로 올라간 그 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까?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을까?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그렇다 치자. 중요한 것은 인생의 비전과 꿈도 없이 사는 우리의 인생이다. 비전과 꿈도 없이 사는 인생은 언젠가 허무하게 될 것이다. 판검사, 10억, 강남 아파트, 벤츠 승용차 같은 목표를 세우고 이것이 꿈인 것처럼 성취한다면 언젠가 그 목표에 질려버릴 것이다. 목표를 성취한 이후 자신의 뒤를 돌아볼 때 과연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인생의 소중한 시간에 온 힘을 다해 공부해야 되는가?/출처:픽사베이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 고등학생이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생에 단 한번 내 모든 힘을 다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이때뿐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무엇을 위해 인생의 소중한 시간에 온 힘을 다해 공부해야 되는가?“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30대든 50대든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항상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 순간에 이것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 지금 나는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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