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관한 가장 흔한 고민..만남과 달리 이별의 속성은 본래 일방적이라는 것 고려해야

군복무 시절 나는 내무반 카운슬러로 통했다. 남는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었던 병장시절 틈만 나면 책을 붙잡고 있던 터라 전역 무렵에는 꽤나 많은 책이 머릿속에 쌓여있었다. 하여 다른 사람들이 들어보고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의 썰을 풀 수 있었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얕고 얇기 그지없어 부끄럽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깊고 세련된 지적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문이 돌다보니 함께 군 생활을 하던 동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알고 있는 온갖 잡지식을 다 끌어 모아 답을 만들어 이야기 해주었는데, 이게 동료와 후임들에게 꽤나 잘 먹혀들었다. 또한 계급이 병장이면 갇힌 계 안에서는 끝판을 깬 경험치에 해당했고 경험을 토대로 나름 똘똘하게 이야기를 잘 해준다는 소문이 돌아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종종 찾아오는 우물 안 카운슬러 역할을 했었다.

고민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군대 내 인간관계, 전역 후 장래, 연애 이렇게 세 가지 범주로 포함되었는데, 그 중 아주 빈번하게 접수되던 요청이 바로 연애와 관련된 고민이었다. 군대에서 연애관련 고민의 주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별은 사회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은 대부분 이랬다. 사회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여친과 어느 날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여친에게 틈 날 때마다 전화를 했지만, 더 이상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다들 알다시피 군에 매여 있는 몸은 움직임이 극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고, 연락도 되지 않고 찾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서 속앓이를 하면서 이별에 대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세부적인 내용에 약간은 차이가 있어도 열에 아홉은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그 상황에서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이 화를 내는 포인트 중 하나는 이별 통보를 직접 만나서 하지 않고 왜 전화로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이라면 적어도 이별은 자신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본 예의라는 이야기와 함께 상대방의 싸가지를 비난하곤 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을 함께 겪고 있기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좌절감에 슬퍼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이자 유일한 것은 위로였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과 더 이상 예전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슬픔과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었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만나서 듣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를 그렸다. 헤어지자는 말을 꼭 만나서 해야 하는 것일까?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이 싸가지 없는 행동일까?

 

▲ 출처 : 픽사베이

제대하고 복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병장 때와 마찬가지로 특기와 취미를 살려 우물 안 카운슬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사랑학 연구소’라는 유치찬란한 브랜드로 소개팅 주선 및 연애 관련 상담 같은 유치찬란한 짓을 했었다. 누군가가 소개팅이나 연애 관련 조언을 원하면 일단 진행시켜주고 소개팅이 성사되거나 연애상담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밥이나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그 ‘사랑학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주변 후배나 동기들의 연애 사연을 많이 듣게 되었고, 그 중 많은 사연이 이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외형의 차이가 있었을 뿐 핵심내용과 구성은 비슷했다. 그리고 군대와는 달리 행동에 제약에 없는 일반 사회에서도 이별의 메시지를 전해 듣는 방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다는 것에 기분나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대의 경험과 복학 이후의 경험을 비교해 보고 알게 된 것은 군대처럼 닫혀있던 아니면 일반 사회처럼 열려있던 간에 이별이라는 메시지의 속성은 사회적 상황에 관계없이 일방적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미 이별은 진행된 것이다. 내가 결정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마음가짐이나 상황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내 생각과 의지다.

연애의 과정에서 만남은 상대방의 동의와 의사가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절대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서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연애를 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상대방도 나와 같은 무게로 관계를 이뤄나간다.

그래서 혼동되는 것 같다. 만남도 그랬고 지금까지의 관계가 모두 상호적이고 교감이 필요한 유형이었으니 이별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헤어짐은 다르다. 나 또는 상대방이 결정하면 끝이고, 아주 일방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려는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설득을 하거나 오해를 푸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 효과를 볼 수도 있어 이별하고자 하는 뜻이 없어지거나 누그러들거나 또는 연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별의 메시지가 던져진 다음 상대방의 이야기들 듣고 이별의 마음을 접는가 유지하는가 또한 나의 결정에 따라 결론이 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별은 일방적인 속성을 갖는다. 그리고 내가 던진 이별의 뜻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은 솔직히 이별을 결정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연애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뜻을 확인하고픈 의도가 숨어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소통 중 강도가 높은 방식에 해당되는 것이지 진정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 출처 : 픽사베이

이처럼 이별은 일방적인 속성을 가진 메시지라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면, 이별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이나 상황이 일방적이라는 것이 과연 해서는 안 될 행동이고 그렇게 기분이 나쁠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말로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문자로 이별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마음을 굳힌 사람과는 달리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터이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별의 마음을 굳힌 사람에게 메시지가 아니라 직접 만나 이별의 메시지를 전해 들으면 결과가 바뀔까? 직접 만나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크게 상대방의 일방적인 결정에 화를 내거나 아니면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냥 듣고 수용하는 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수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행동은 이별을 결심한 사람에게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의 연애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별을 하고 싶어도 예상되는 상대방의 반응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냥 참고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이별은 일방적인 메시지다. 그렇기에 결정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이러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난 이후에 내린 이별의 결정은 내가 중심이 되는 결정이지 상대방의 동의와 공감을 얻기 위한 결정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대방은 이별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충분히 예상된다면 내 마음의 부담을 줄이면서 이별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나쁜 일일까? 문자로 헤어지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해서는 안 될 행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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