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장남인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가 지으시던 농사를 이어서 짓고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공무원 생활을 1년만 하고 농사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보니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농사일을 접을 수가 없어 출근하기 전에 논에 나가서 물꼬를 살피고, 저녁에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농사일을 했다. 농사일 중에 봄에 해야 하는 모내기와 가을에 해야 하는 탈곡은 마을 사람들이 두레를 엮어서 하기 때문에 출근하면서 할 수가 없어 봄에 모내기를 위한 한 달과 가을에 수확을 위한 한 달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했지만 논에 물꼬보기, 논밭의 잡초제거, 피살이, 비료주기 등의 일은 출근하면 서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충분히 가능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우시면서 대학진학은 포기해야했지만 공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농사일 외에도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하여 밤에는 공부를 했다.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2년 동안은 밤 12시 이전에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새벽 4시경에 일어나니까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로 활동 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시간은 준비해야 했다. 공무원생활을 하며 농부로 농사를 지으며, 방송통신대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1인 4역의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새벽이나 저녁시간에 농사일을 해야 했는데 때로는 사무실에 일이 많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때도 있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새벽에 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새벽 4시경에 일어나 공부를 하다가 밖이 훤해지기 시작하는 5시나 6시에는 논에 나가 일을 하다가 7시경에 집에 들어와 씻고 출근했다. 지금도 8시 이전에 출근하는데 그때도 농사일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늦게 출근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8시 이전에 출근했다. 8시 이전에 출근 하기 위해서는 기동성이 필요해 오토바이도 구입하여 타고 다녔다.

공무원 시작할 때부터 8시 이전에 출근하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지금은 초과근무 수당제도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초과근무수당 제도가 없었다.바쁠 때는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거리를 싸가지고 집으로 와서 환할 때는 논에 나가서 일하다가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집으로 돌아와서 사무실에서 가져온 일을 하다가 한두 시간은 공부를 하고 밤 12시경에야 잠을 청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다. 1년간 이러한 생활은 계속되었지만 젊어서 그런지 4시간만 자도 몸이 피로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 없이 아이들 앞에설 수는 없다. 아이들 앞에 서기 위해서는 몇 시간은 준비를 해야설 수 있다. 1년 365일 편하게 쉴 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피곤함을 참아낼 수 있었고 어느 한 가지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경우는 뭔가를 빠트린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한시도 허튼짓을 하며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당시 농사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술도 배우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면 바로 집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저녁에 집에 가져가는 일을 줄이기 위해 낮에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빡빡하게 일을 했다. 이러한 생활이 1년은 괜찮았는데 2년, 3년이 되니까 피곤함이 느껴졌고 좀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일 중에 뭔가 하나 줄이려고 생각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농사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농사일을 남에게 맡기고 나니까 잠을 더 잘 수가 있었다. 좀 편해졌다. 편하다 보니까 늦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질 때문에 계획했던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젊어서 그런지 잠자는 시간을 줄여 4시간만 자도 피곤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을 좀 벌어보자며 농사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잠자는 시간이 늘어났는데도 피곤함이 느껴졌다. 사람이 편해지면 더 편해지려고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에 따라서는 1인 2역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1인 3역이나 1인 4역 이상의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 나이 60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정리해 보자며 글을 쓰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힘들기는 했었지만 1인 4역을 했을 때,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면서 또 다시 1인 4 역을 해야 될 때가 있을지 모른다. 1인 4역을 할 때가 오면 피하지 않고 도전해 볼 것이다.

전에 대학원에서 상담 공부를 했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여 사회 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제 공직을 마무리할 시기이지만 산림치유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책을 쓰고 있다. 한 달에 3회 이상은 봉사 활동도 참여하고 있으니 지금도 1인 3역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남는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자며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무언가는 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다르게 느껴진다.나만을 위한 삶보다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꾸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하루에 4시간만 자고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게 쓰지 말자며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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