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소설, 드라마...모든 예술 장르에 연애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이것이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라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짝짓기에 관해 이렇게나 말이 많고 고민이 많은 것은 현대의 시대적 특징이다.

물론 사람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나 사랑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 사회 경제적 조건에 많이 묶여 있었던 전근대에는 인간관계에 대해 선택할 여지도 고민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근대에 와서 ‘개인’이란 존재가 인정되고, 계층과 관습을 떠나 자기 뜻대로 짝을 찾을 자유가 주어지자 모두가 최선의 짝을 찾기 위해 경쟁하고 고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이른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게다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헤어질 자유가 있으니,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개인이 감당할 숙제가 되어버렸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서로의 미묘한 사회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욕망을 조율하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일보다는 쉬운 법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지배적 가치관이 사라지면서 연인과 가족이 개인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엇이 되어 버린 것도 이유이다. 옛날에는 구원을 신에게서 찾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개인의 존재 이유였는데, 요즘엔 나의 구원과 존재 이유를 ‘너’ 아니면 ‘내 새끼’에서나 찾게 된 것이다. 이런 위험한 일이! 종교나 사상, 국가 체제도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은 이보다 훨씬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이니 말이다.

 

▲ 출처:픽사베이

 

게다가 반대로 사회, 경제적으로는 짝짓기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산업이 발달하고 분업화되면서 남녀가 반드시 짝을 이루고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계와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짝짓기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는데, 안타깝게도 개인은 결코 개인의 구원을 감당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치명적인 문제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짝짓기의 문제를 대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특별한 의미 부여나 환상을 버리고 다만 인간관계의 문제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다른 인간관계처럼 연애도 어려운 게 정상이다. 그런데 연애가 상대만 잘 만나면 풀리는 것처럼, 오히려 다른 삶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처럼 환상을 조장하는 풍조가 문제다.

연애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만큼 능숙해서라기보다는 거기 별로 연연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실제로 남들보다 연애에 능숙하고 덜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 연애의 특이점이라면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친밀한 관계에 속하며, 성적인 욕구를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편안하게 느끼는 관계의 거리가 남들에 비해 먼(즉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성격이거나, 성적 욕구의 정도나 종류가 평균을 벗어난 사람들은 다른 관계에 비해 연애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자기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면 행복에 장애가 될 정도로까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연애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연애가 특별하다는 환상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관계의 법칙을 벗어난 상황을 기대하거나, 둘째, 연애가 인생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조건이라 여기는 경우이다.

신뢰도 쌓기 전부터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식의 매스컴이 만들어내는 가당찮은 환상의 모델은 아마도 모성애일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태어남과 동시에 모성애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살아남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평생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성애와 같은 절대적 사랑이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 본능에 따른 호르몬의 작용 덕분이다.

성적인 관계에서 합리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끌림이 생기는 것도 종족 번식의 본능에 따른 호르몬의 작용(이른바 ‘케미’) 탓이므로, 사람마다 체질적으로 다르고 영원할 수도 없다. 사랑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케미’가 아니라 인간적인 자질과 노력, 상황의 도움이 모두 갖춰질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세상사와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 출처:픽사베이

짝짓기도 직장, 수입, 가족관계, 교우관계, 취미생활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사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우선순위는 각기 다를 것이다. 만족스러운 짝짓기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인 것처럼 몰아가는 현 풍조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지금의 연애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우선 다른 모든 일과 같이 짝짓기에도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투자가 더 필요한지 가늠해 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그만큼의 투자를 더할 여유와 거기 따른 리스크(투자한 만큼 반드시 건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를 감당할 의지가 있는지,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보자.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고 모든 것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순위에 우선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다. 짝짓기가 자기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투자할 마음도 없는 짝짓기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짝짓기의 우선순위가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찾아보는 쪽이 행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