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가 20일 극적으로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더 내고 더 받는” 형태로 요약된다. 월급에서 떼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고, 실제 연금 수령액을 결정하는 소득대체율도 40%에서 43%로 인상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로써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래 역대 세 번째 연금개혁이 성사됐으며, 정부와 국회가 예상하는 연금 재정소진 시점(기금 고갈 시점)도 9년 늦춰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재정 안정과 노인빈곤 해소라는 두 목표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의 주요 내용
보험료율 9%→13%
내년부터 8년간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33년에는 13%가 된다. 1998년 이후 처음 오르는 보험료율이다. 예를 들어 월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의 경우, 올해는 본인이 13만5천 원(전체 27만 원의 절반)을 내지만, 내년 9.5%, 이후 지속 상승해 2033년에 13%가 되면 본인 부담액이 19만5천 원으로 늘어난다.
소득대체율 40%→43%
내년에 한 번에 인상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첫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의미한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월 309만 원 소득자의 경우 개혁 전보다 연금을 연간 약 9만 원가량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기금소진 시점 2055년→2064년
정부는 이번 개혁을 통해 연금 재정의 적자 전환 시점이 현행 제도보다 7년 늦은 2048년, 기금 소진은 9년 늦어진 2064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 18년 만의 합의…어떤 과정을 거쳤나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이후 꾸준한 재정 악화를 우려해 이미 두 차례 큰 폭의 개혁을 겪었다.
1차 개혁(1998년)에서는 보험료율을 9%까지 높이고, 수급 시작 연령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2차 개혁(2007년)에서는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 인하하는 대신,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을 통해 노후 보장 강화를 일부 보완했다.
이후 저출산과 고령화 속에서 기금 고갈 문제가 심각해졌음에도 여야의 이견이 커 3차 개혁안 마련이 지연됐다. 지난해 정부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를 골자로 한 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공방이 이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소득대체율 43%”로 조정돼 극적인 합의가 성사됐다.
■ 내는 돈과 받는 돈, 구체적으로 얼마나 달라지나
월 소득 309만 원 직장인 기준
개혁 이전: 평생 납부금 총액 1억3천여만 원, 첫 해 연금액 123만7천 원
개혁 이후: 평생 납부금 총액 1억8천여만 원, 첫 해 연금액 132만9천 원
결과적으로 생애 동안 약 5천여만 원을 더 내고, 약 2천만 원을 추가로 받는 셈이다.
군 복무·출산 기간 가입 인정 확대
기존엔 둘째 아기부터만 크레디트를 인정했으나, 첫째도 가입 기간 인정이 가능해지고 상한도 없앤다. 군 복무 크레디트도 기존 최대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늘어난다.
저소득 지역가입자 지원 확대
소득이 낮아 보험료를 내기 어려워 납부를 중단한 경우, 예전에는 ‘납부 재개’ 의사를 밝힌 가입자만 보험료 일부를 지원받았다. 개혁안은 납부 재개와 무관하게 일정 소득 이하인 모든 지역가입자에게 최대 12개월간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하기로 했다.
■ “재정 안정은 부족” vs. “노인 빈곤 해소도 미흡”
이번 합의안으로 연금 재정이 완전히 안정된다고 보긴 어렵다. 2064년 이후에도 재정 적자가 커질 가능성이 있어,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예컨대 해외 여러 나라가 채택한 ‘자동조정장치’(인구·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수급액이나 수급 연령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 도입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반면 “받는 연금액을 조금 더 올렸다 해도 여전히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라며, 43%로 인상된 소득대체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직역연금과의 연계·정비 등 구조적 개선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내 연금 못 받게 되진 않을까?…“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개혁안에는 국민연금 급여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는 조항이 새롭게 담겼다. 지금도 법에 “국가는 연금급여의 안정적·지속적 지급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적혀 있지만, 이번에는 ‘국가가 연금급여 지급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보다 명확히 명시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입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제도적 근거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 남은 과제는?
오랜 진통 끝에 이뤄진 이번 3차 연금개혁은 국민연금 재정의 급격한 악화를 다소 늦추고, 노후 소득 수준도 일부 개선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같은 핵심 수치(모수개혁)만으로 재정안정과 노인 빈곤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연금 특위 등에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구조개혁” 분야, 즉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나 다른 연금·복지제도와의 연계 방안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와 함께 중·장기적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실제 시행되기까지 남은 절차와 정치권 협의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내는 보험료” 부담과 “노인 빈곤 해소”라는 상충된 과제 속에서, 국민연금이 어떻게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