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 전곡 완주로 한 계단 도약하다

인류 역사의 스테디셀러는 단연코 성경(bible)이다. 그렇다면 음악사에서 성경과 같은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인 피아노에서는 신약성서로 베토벤의 피아노의 소나타를, 구약성서로는 바흐의 평균율 작품을 꼽는다. 그렇다면 바이올린은 어떨까. 

바이올린에서는 많은 이들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작품들을 꼽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 이 작품들은 하나하나 정교하고, 높은 예술성과 난이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피하고 싶은 높은 벽일 것이다.

최근 이러한 전곡 시리즈에 도전했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2주 간격으로 총 2회에 걸쳐 전곡을 완주해 낸 호기로운 연주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 1바이올린 상임단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를 만나보자.


한국투데이(이하 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인희(이하 박):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 전곡 시리즈를 마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단원으로 8년간 활둥 후 현재 독일 유학을 준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한: 말씀 주신 것처럼 최근 전곡 시리즈를 마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도전하게 되셨나요?

박: 제가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얘기하자면 너무 길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악기를 붙잡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더 버거운 삶이라, 앙상블리안에 후배의 연주를 보러 왔다가 느낌이 좋아서 여기에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어요. 바쁜 와중에 큰 도전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여온 감정을 바흐에 담고 싶었고, 이를 토대로 좀 더 단단한 연주자로 성장하고 싶기도 했죠.

바흐의 음악은  너무나도 정직하고 성스럽고 올곧아서 어쩌면 연주자가 인생의 전부를 바쳐 연구해도 모자랄 수 있어요. 특히 이 6곡의 무반주 파르티타와 소나타는 성경과도 같아서, 저 스스로와 세상을 향한 어떤 간절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 2주 간격으로 모든 곡을 연주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박: 아무래도 첫 시리즈 때는 다소 떨렸어요. 두번째 연주에서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는데 오히려 나를 내려놓고 음악에만 집중을 하니 음악이 저를 이끌어주는 신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별히 가장 마지막에 연주했던 파르티타 2번의 5번째 곡인 샤콘느는 저의 은사님과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곡이예요.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순간에 지금까지 겪은 일들과 여러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밀려와 그런지, 계속 울컥하는 감정을 다잡으면서 연주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한: 그렇군요. 은사님이 박인희님에게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 고3 입시 직전에 만난 고 정남일 선생님을 빼 놓고는 제 음악 인생을 얘기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제 삶과 음악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셨고 선생님과의 만남은 제가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 되었어요. 대학입학은 당시 가장 중요한 목표였지만, 선생님을 통해 진정한 음악에 대한 것과 소중한 인생을 배웠고 그 짧은 시간들이지금의 저를 이 길에 있게 한 것 같아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줄곧 선생님처럼 좋은 영향력과 훌륭한 음악, 그리고 삶을 전달해줄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희의 스승인 고 바이올리니스트 정남일(왼쪽), 어린 시절의 박인희(오른쪽)
박인희의 스승인 고 바이올리니스트 정남일(왼쪽), 어린 시절의 박인희(오른쪽)

한: 음악가로서의 첫 데뷔는 언제였을까요?

박: 고등학교 2학년 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처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어요. 저는 예술 중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를 나왔어요. 따라서 무대 경험이 정말 없었기 때문에 저에겐 정말 좋은 기회였죠. 지금 보면 그저 어리고 미숙하지만 다시 보니 또 막상 떨지도 않고 잘하더라고요(웃음). 오히려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연주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때때로 그립기도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한: 대학 졸업 후 바로 오케스트라 입단하여 9년 동안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박: 졸업하자마자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어요. 사실 저는 더 배우고자 하는 열망도 너무 컸어서 유학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오랜 기간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고 최근에야 회복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오케스트라 동료들과 선생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좋은 동력을 받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내에서는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이에요. 연주 하나하나를 하고 보면 순식간에 1년이 지나가고, 그 안에서 어렵고 힘든 일들도, 감사하고 즐거운 일들도 많아요.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고, 제 재능을 살려서 지금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다양한 레퍼토리와 좋은 경험들을 좀 더 쌓아 나가고 싶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근무 후 현재는 독일 유학을 준비 중입니다.

 

한: 네, 어느덧 오늘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박: 저는 음악을 연주할 때 뭐랄까 또 다른 내가 되는 게 좋아요. 물론 악기와 함께할 때도, 없을 때도 나 자신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선을 바이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해줄 수 있잖아요. 내 목소리가 음악으로 변하는 그 순간 자체가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늘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살아갈수록 우리의 삶은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음악과 함께하는 이 순간만큼은 작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제가 우울증이 심하다 보니, 인생에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느낌을 자주 받아요. 지금의 제가 살아가는 의미이자 원동력이기도 한데, 음악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한 줄기의 힘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박: 저는 연주자임과 동시에 클래식 애호가라서 레코딩을 많이 듣는데요. 음악을 통해 느끼는 어떤 감정들은 아무리 좋은 레코딩을 들어도 직접 듣는 실연의 감동을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연주자들이 수많은 노력 끝에 서는 연주 무대는 너무도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성취감과 청중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느끼는 벅찬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장기화 된 코로나로 인해 많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무대들이 많이 활성화되고, 언제든 쉽게 근처 공연장을찾아 함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음악 안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음악 연주자이자 애호가로서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그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올린 현과 활 끝에 자신의 지난 추억과, 무대에서의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도전과 용기를 모두 담아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 시리즈로 음악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의 행보가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인희

선화예술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서울음악콩쿠르 전체대상, Golden Classical Music Awards 1위,
Mozart International Competition 2위, 광주국제음악콩쿠르 3위
Lucerne Festival 초청연주
부천챔버오케스트라, 세종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독주회, 모차르트홀 초청 독주회, 유중아트홀, 마리아칼라스홀 초청 리사이틀
아르떼TV PALLET 아티스트
2020-22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시리즈 전회 연주(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앙상블리안 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 전곡 시리즈 연주
마리아칼라스홀, 반포심산아트홀 초청 리사이틀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상임단원(2014-2022), 강릉시립교향악단 객원수석, Ensemble The K, Étere Quartet 리더 역임

 

피아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신진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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