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와 다말의 관계

사진: 장남인 엘이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이 다말을 아내로 삼게 했다.  픽사베이
사진: 장남인 엘이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이 다말을 아내로 삼게 했다.  픽사베이

창38장에서 유다는 가나안 여인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다. 유다는 장남인 엘을 위해 다말(Tamar)이라는 여인을 그의 아내로 받아들인다 다말은 야자 나무(Palm tree)라는 뜻이다. 7절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다고 기록한다. 장남인 엘이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범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본문은 결혼과 관련된 범죄임을 암시한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그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굳은 신념(?)으로 자식 갖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장남인 엘이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이 다말을 아내로 삼게 했다.

레위기에는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다(레18:16, 20:21). 단 예외인 경우는 남편이 죽고 그 아내에게 자식이 없을 때이다(신25:5-10). 이 제도는 히브리어로 입붐(Yibbum) 또는 라틴어로 죽은 남편의 형제를 뜻하는 레비르(Levir)에서 따온 레비레이트 결혼(Levirate marriage)으로 불린다.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해야 하는 남자의 의무는 후에 변형되어 할리차(Chalitzah)라는 의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 입붐의 의무를 거부할 수 있었다.

사진: 프란체스코 하예츠의 룻 초상화
사진: 프란체스코 하예츠의 룻 초상화

룻기에서 기업 무를 자가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자 보아스가 그녀의 대를 이어주는 구속자 즉 고엘(Redeemer)이 된다. 이 레비레이트 법은 번성하고 생육하라는 하나님의 최초의 축복의 명령에 근거한다. 이 축복은 부부간의 사랑이나 관계보다 그 가문의 영속과 자손을 통한 하나님의 길(Way)의 전승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런 종교적, 문화적 사회구조 아래 집안의 형제들은 공동의 목표와 책임을 공유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는다. 이는 남편이 죽어 결혼 상태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도덕적 결핍을 집안의 형제들이 채워 주어야 하는 결혼의 도덕적 측면을 보여준다.

사진: 오난은 다말과의 성적인 관계를 율법에 따른 의무가 아니라 근친상간의 불법적인 관계로 바꾸었다.  픽사베이
사진: 오난은 다말과의 성적인 관계를 율법에 따른 의무가 아니라 근친상간의 불법적인 관계로 바꾸었다.  픽사베이

최초로 질외사정을 통한 피임법을 사용한 오난은 다말이 자기의 자식을 갖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다말과의 성적인 관계를 율법에 따른 의무가 아니라 근친상간의 불법적인 관계로 바꾸었다. 법적으로 장남이 된 오난은 다말이 자식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고 상대적으로 물려받게 될 재산의 몫이 줄어들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남의 자식을 자신이 책임지고 양육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창34장에서 시므온과 레위가 거룩한 할례 의식을 더럽힌 것처럼 그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해 율법의 의무를 져버렸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그는 형의 뒤를 따라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다.

사진: 다말과 관계를 맺은 남자들마다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레비레이트 법의 준수보다 마지막 남은 아들의 생명을 보전하려고 애썼다. 픽사베이
사진: 다말과 관계를 맺은 남자들마다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레비레이트 법의 준수보다 마지막 남은 아들의 생명을 보전하려고 애썼다. 픽사베이

이 일이 있은 후 유다는 세째 아들인 셀라를 다말에게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말과 관계를 맺은 남자들마다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레비레이트 법의 준수보다 마지막 남은 아들의 생명을 보전하려고 애썼다. 유다는 다말이 집안에 재난을 가져오는 재수없는 여자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는 출가외인인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며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다말에게 연락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더 이상 마주치기를 원하지 않은 그는 그녀가 제풀에 꺾여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기다렸다. 유다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두 아들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돈 한푼없이 친정으로 쫓겨온 다말은 유다의 영향권 아래 법적으로 자유롭게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새 출발을 한 유다에게 왜 불행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 자식들이 죽고 집안이 올바로 세워지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인가? 유다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했다. 성경은 유다의 아내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유다의 문제는 불행이 계속 닥치는데도 그 불행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불행의 원인을 다말에게 돌리고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불평 불만을 그치지 않는다.

사진: 고통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픽사베이
사진: 고통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픽사베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의 울부짖음 속에서 시련과 고통의 의미가 큰 깨달음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첫걸음이다. 유다가 두 아들을 잃고 세째 아들을 주기를 꺼린 것은 후에 야곱이 요셉과 시므온을 잃고 세 번째로 베냐민을 주기를 꺼린 것을 미리 예고하는 전조이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인터넷 통신장비업체인 다 국적기업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의 부사장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 위치한 본사로 발령받아 1998년 온가족이 도미하였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에 서 성장한 필자는 성경에 관한 많은 의문점을 자발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뒤늦은 나이에 향학열을 불태우며 풀러 신학교 대학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취득하고 원어 성경의 이해를 돕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미국 남침례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 후아리조나 등대교회 등 몇몇 작은 교회를 섬기다가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코리아타운에서 ‘샬롬 공동체 교회’를 개척하고 다년간 사람들에 성경을 가르치며 성경의 올바른 이해와 의식개혁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히브리적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유대 랍비와 메시아닉 회당의 목회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토라 연구에 필요한 많은 자료와 도서를 소개받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점차 그 범위를 넓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역사적 예수, 세상의 종말을 다루는 요한계시록 등에관한 폭넓은 연구를 하며 학문에 정진하려고 애썼다.특히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랫동안 ‘죽음 이후’의 문제에 깊은관심을 가지고 천국을 다른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천국에 관한 올바른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여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저서로는 “다시 읽는성경, 요셉과 그의 형제들”(쿰란출판사, 2010년), 하늘에 갇힌 천국, 나는 그 곳에 갇히지 않기로 했다(고려글방,2022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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