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에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불러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낸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형제들의 샬롬(평화)을 확인하고 오라는 명령이다. 그들이 양 떼를 몰고 멀리 나가 있으니 평안히 잘 있는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제들 간의 샬롬은 없었다. 그들의 샬롬을 확인하기 위해 세겜 땅에 간 요셉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과 증오로 얼룩진 형제들에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요셉은 헤브론에서 50마일 떨어진 세겜으로 간다. 이는 5일동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세겜은 창34장에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보복으로 야곱의 아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하여 요셉이 15세 되던 해 즉 2년 전에 피의 살륙을 자행한 곳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 살륙의 현장인 세겜으로 갔을 때 야곱은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14절에서 야곱의 명령인 지금 가라(Go now)의 히브리어 “렠 나(Lek Na)”와 13절의 요셉의 대답인 제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의 히브리어 “히네니(Hineni)”는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그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 아브라함의 거듭되는 대답인 제가 여기 있나이다(히네니, Here I am)를 연상케 한다. 아이러니컬하게 세겜은 요셉의 뼈가 묻힌 곳이다. 창50장 24-26절에서 요셉은 자기의 시체를 조상의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다. 그의 유언대로 출13장 19절에 모세가 출애굽 할 때 그의 뼈를 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에서 탈출한 후 여호수아 24장 3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요셉의 뼈를 세겜 땅에 묻는다.
요셉은 세겜에서 형들을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방황하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으로부터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정보를 듣고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13마일 떨어진 도단으로 간다. 그는 형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만나러 세겜에서 다시 도단에 까지 찾아간다. 요셉은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는 펄펄 끓는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절에 형제들이 가까이 오는 요셉을 보고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꿈꾸는 자 만이 인생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브라함과 야곱도 꿈꾸는 자들이었다. 꿈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불꽃처럼 타올라 한 조각 남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치열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인생의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도망가지 않고 폭풍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꿈이다. 꿈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홀로 설 수 있다. 오래 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곳에 있는 러시아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고 눈빛이 죽어 있어 그 곳에서 생활하는 후배에게 이유를 물으니 선배님, 러시아 사람들은 꿈이 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 그리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표정과 희미한 눈빛을 나는 보았다.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꿈과 희망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나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
형제들은 그를 죽여 매장하지 말고 구덩이에 그냥 던져 버리자고 제안하면서 꿈의 내용과 연결시킨다. 우리가 그를 죽인다면 과연 요셉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때 장남인 르우벤이 나서며 생명을 해치지 말고 구덩이에 던지자고 형제들을 설득한다. 그들은 요셉이 가까이 오자 그의 채색 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진다. 구덩이는 암벽 바위를 뚫어 물을 보관하기 위해 파 놓은 곳이다. 25절에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애절한 소리를 뒤로한 채 태연히 앉아서 요셉이 마켓에 들러 사온 삼각김밥과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그토록 잔인하고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들이 아니라면 아마 자신들의 캠프로 돌아가서 음식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음식을 먹다가 지나가는 장사꾼들을 만난다. 25절의 이스마엘 족속과 28절의 미디안 사람은 같은 그룹에 속한 같은 사람들이다. 유다의 제안으로 그들은 은 20세겔을 받고 요셉을 팔아 넘긴다. 르우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발생한다. 29절에 르우벤이 돌아와서 요셉을 팔아 넘긴 사실을 알게 되고 요셉을 구하려고 애썼던 그는 허탈감과 고민에 빠진다.
한편 유다가 들고 돌아온 요셉의 채색 옷을 보고 야곱은 비통한 슬픔에 잠긴다. 33절에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찢겼도다 라며 울부짖는다. 요셉이 찢겼도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타롭 토랍 요셉(Tarof, toraf, yosef)” 이라고 하며 형제들의 숨은 의도를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서 채색 옷은 바로 요셉의 꿈을 담은 요셉 자신이었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기 전 옷을 벗기고 그 옷을 땅 바닥에 던졌다. 나의 옷! 나의 옷! 옷을 달라고 부르짖는 요셉을 파괴하고 그의 꿈이 산산 조각으로 깨어져 길바닥에 나 뒹굴게 한다. 요셉의 거대한 꿈은 형제들에 의해 이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