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백화점 시대’?…수천만 원짜리 신세계 패키지에 긴장하는 메이저 여행사들
고가 소비의 중심이던 백화점이 이제 여행 시장까지 장악할 기세다. 신세계백화점이 내놓은 여행 브랜드 ‘비아신세계’가 고가 패키지 시장에서 높은 재구매율을 기록하며 기존 여행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전통 여행사들이 주도하던 프리미엄 여행 시장에 전혀 다른 방식의 강자가 등장한 셈이다.
신세계가 지난 8월 출시한 ‘비아신세계’는 출시 직후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 여행상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비싸서’가 아니라, **“재구매율 25%”**라는 수치가 메이저 여행사들을 놀라게 한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엄 여행 시장에서 이 같은 재구매율은 드문 사례다.
실제 구성도 남다르다. 국내 미식 여행조차 2박 3일에 300만 원대를 호가하고,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동행하는 10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3500만 원, 남미를 14일간 누비는 패키지는 6000만 원까지 책정됐다. 여기에 5성급 호텔은 기본, 전용 큐레이터가 동행하는 일정, ‘옵션 투어 없음’이라는 파격적 조건까지 붙었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여행 경비 전액이 백화점 VIP 실적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신세계는 연간 누적 소비금액에 따라 VIP 등급을 나누는데, 상위 999명에게만 주어지는 ‘트리니티’ 등급은 고객 충성도와 그룹 이미지 모두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소비자들은 필요 없는 명품 대신 고급 여행을 택해 등급을 유지하거나 끌어올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연말이 다가오면 VIP 실적을 맞추려는 수요가 몰리는데, 비아신세계는 소비자 니즈와 유통 전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흐름이 기존 여행사들에게는 위협이라는 점이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 메이저 여행사들도 제우스 등 프리미엄 전담팀을 가동해 고가 시장을 공략 중이지만, 1000만 원대를 넘는 상품에는 여전히 신청자가 적고, 수익성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신세계와의 가장 큰 차이는 ‘여행 설계 방식’이다. 기존 여행사들은 대부분 현지 랜드사를 통해 패키지를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옵션 투어나 쇼핑 일정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모두투어는 최근 한 유튜버에 의해 40만 원 상당의 옵션 관광을 사실상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미지 타격을 입기도 했다.
반면 비아신세계는 고객 만족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초점을 맞춘 운영 구조를 지녔다. 수익보다 ‘소비자의 경험’이 우선이라는 철학은, 고객 불만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해결을 우선시하는 서비스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신세계 관계자는 “비아신세계는 단순한 여행 상품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는 하나의 플랫폼”이라며 “매출보다는 고객 경험의 품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여행업계 일각에서는 “이대로라면 프리미엄 시장은 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행의 콘텐츠가 아닌 ‘소비자 경험의 총합’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