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미칼럼] 당신의 모든 기록이 글이다
[이창미칼럼] 당신의 모든 기록이 글이다
  • 이창미
  • 승인 2020.02.13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 다. 아버지가 술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되고, 정서적 으로도 무능하게 되고, 술을 먹기 전과 후가 너무 두렵다는 것을 안다. 너무 끔찍하다는 것을 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끔찍함을 알면서도 정 상인의 4배 이상으로 중독자가 된다고 한다. 중독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한 다고 한다. 이 통계가 맞는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내가 후자와 결혼했음이 다. 나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까? 고민했다. 불행은 반복된다는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큰 상처를 만난 것이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 회복한 안데르센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교과서의 위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안데르센의 동 화를 보고 희망을 꿈꿨던 어린이였다.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글 쓰는 것을 좋아 했다. 안데르센 엄마는 매춘부였고 친엄마한테 맞으며 매춘을 하기 위해 길 거리를 돌아다녔고 길에서 임신하고 임신한 배로 다른 곳으로 도망가 한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 후 태어난 아이가 안데르센이다. 의붓아버지는 정신 분열자로 자살하고 엄마는 알코올중독으로 죽는다.

안데르센은 가난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라 정원 을 걸었다. 연못에서 못생긴 아기 백조를 보았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 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곧 어미처럼 멋진 백조가 되겠지.” 그 런 생각을 하다가 쓰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가 자신을 이야기한 셈이다.

안데르센의 삶에 대해 알고 나니 슬펐다. 어릴 때 “미운 오리 새끼”는 희 망을 주고 꿈을 꾸게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니 큰 감동이 밀려온 다. 안데르센 삶 자체가 백조가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미운 오리 새끼였고 외로웠다. 나 또한 중독, 가난, 폭력 모든 불행의 종합세트였다. 불행하다고 불행한 경험만 생각하며 분노하곤 했 다. 그럴수록 더 화가 났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원망하고 분노만 했던 것인데, 불행은 반복되었다. 결국 피하려 했던 알코올중독 아빠 모습과 똑같은 사람 을 선택하고 말았다.

안데르센은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받아들였다. 불행을 경험하고 행복 을 찾는 상상으로 방향을 잡았고 난 불만과 분노만 채웠던 것이었다. 그와 다 른 선택이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상상이 우리를 지배한다. 상상의 힘으로 원하는 그림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그려야, 틀린 그림을 두 번 그리지 않게 되 는 것이다. 이젠 다른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한다.

불행이 축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불행 종합세트의 경험들이 나 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련으로 인해 나는 많은 경험을 하였고 경험으로 깨달은 것들이 자산이 되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해도 잊는다고 잊히지 않는다. 용서하는 것 또한 어설프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 불행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불행을 바 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끌어내야 벗어나는 힘이 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기 쁜 일이 있어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크게 낙담하지 않는 다. 모든 것은 한때의 모습일 뿐이라고 한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바로 글이다. 결국 뿌리를 하나 표현하고자 하 는 욕망이 글쓰기로 오게 됐다. 난 늘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할 수 있어”라 며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내 주위엔 별로 없다. 포기가 빠른 사람이 많아서 나도 항상 포기하고 별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닥쳐온 사업 실패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집안과 일하고 또 일해도 벗어나 지 못하는 가난과 이런 것들은 마지막 자존감까지 무너뜨렸다. 가난은 그저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을 자살이라는 단어로 매도시키려 했던 시간도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오고 난 그림자와 손을 잡은 것이 다. 나에게 죽는다는 것이 내 인생이 더는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었던 시기라고 여겼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예감하며 죽음의 시간으로 손목을 그었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죽을힘으로 살 아야지” 했던 내가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깨달음이 왔다. 인생을 집어삼킬 것 같은 공포에 압도당해 우왕좌왕하다 죽음을 선택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이후 나에게 변화가 왔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죽음이기에 누구도 옳고 그 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 더는 남의 죽음에 관해 자살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입방아를 찢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삶이라는 것이 아무리 잘 살아도 마지막엔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최대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아야 한다. 인생의 적기를 놓치지 않는 그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 다고 본다.

어제 나에게 죽음을 넘나드는 그 사건이 있었는데도, 오늘이 똑같이 왔 다. 하루는 매일 그렇게 똑같이 온다. 똑같은 오늘이 없을 번한 오늘이 세상 은 아무 일 없는 듯 똑같이 흐르고 있다. 난 어떻게 오늘을 똑같이 보낼까? 이렇게 혼자 적당히 아파하다가 적당히 우울해하다가 세상이 그렇듯 아무 일 없는 듯 휩싸이면 된다.

힘든 상황을 뚫고 나오는 희망은 살아갈 용기를 되찾게 해준다. 무엇을 결 정하더라도 그것이 어려울 때 당장 결정하지 말자. 우리가 언제 한시라도 편 안했고 걱정 없던 때가 있었는가?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게 사람이다.

기회는 어려울 때 온다. 이제부턴 부정적인 사람들과 절대 어울리지 말고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아라. 기회다. 지금부터 나에게 기회가 왔다. 어려움 극복할 힘을 길러주고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기회 를 만든다 여겨라.

세상을 움직이는 건 바로 희망이다. 나는 희망의 글을 만난다. 붓이 가까 이 있고 종이가 가까이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숨통이다. 환경에 불만이 많았지 만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난 웃는다. 더 크게 웃는다. 웃으 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나의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인생을 두고 협상하지 말자. 행복에도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하지 않으면 사육당하고 이용당하게 된다. 행복을 학습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행 복을 물질적인 충족으로 설정해버리면 가치의 기준이 흔들리지만 행복학습 을 통해 행복지수로 충족감과 행복감이 높아진다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 는 행복하다’를 되뇌는 것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 효과는 있다. 그러 나 그렇게만 하면 오래가지 않는다. 무의식의 행복에도 관리가 필요하기 때 문이다.

사람 때문에 힘이 들 때도 사람이 힘이 될 때도 있다. 사람이 답이다. 사 람으로 힘들다고 혼자 고립되지 말자. 혼자 있으면 비 오듯이 우울해진다. 나 를 위해서는 먼저 나와 친해져야 한다. 나를 억압하고 밀어내면 나의 내면은 분열된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남에게 집착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자.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사람을 만나며 웃으며 소통하는 것이 나의 우울함을 극복했던 수단이었다.

선택했으면 무조건 밀고 나가라. 후회나 평가는 그다음에 해도 된다. 버 스 떠나면 다른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놓친 버스를 타야 늦지 않을 것 같은 건 착각이다. 그 버스가 중간에 고장 나서 멈출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 고 놓쳤기에 모르는 일이다. 놓친 버스를 타야 일찍 도착할 것 같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뒤따르느라고 늦은 것도 앞선다고 빠른 것도 아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