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뭉클하게 차오르는 눈물 같은 감정 이 울컥 치솟아 올라온다고 할까? 내게 엄마란 그런 모습으로 각인된 것 같 다. 어렸을 땐 엄마의 자리가 늘 부족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된 지금, 내 아 이에게 엄마라는 자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절실히 돈이 필요했다. 자랑스럽지 못한 생활고에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 로, 일을 우선으로 택했다. 일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이것 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무조건 질주했다. 그런 데 나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큰 불만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내가 힘든 것 참아내며, 오직 일에 매두몰신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는 없고, 자기 일만 하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전락되어 있었다. 내가 왜 무엇 때 문에… 자문자답하며 스스로 돌아봐도, 잘못한 흠결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자신의 잘못을, 본인 스스로 판단해 찾아내기 어려울 경우가 숱하다. 보통의 경우 남의 잘못은 잘 들춰내면서 자신의 잘못이나 흠은 알고도 모른 척하기도 하지만, 진정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 같은 과정에서, 때로는 일 이 고약하게 꼬이거나, 다툼이나 싸움으로 번지거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파고들면 부딪치는 마찰 요인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시시비비의 공평한 판단은, 양쪽의 사정(말)을 정확히 들은 후에,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왜? 그런 것인지 묻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자기의 생각이나 눈에 보이는 상황을 바탕으로, 추측하거나 단정 짓는 오류를 범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또한 다툼이 발생했을 경우, 어느 한 쪽 말만 들으면 다른 한 쪽에 불이익이나 억울한 상황이 개재될 위험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하 게 양쪽의 당사자 견해를 귀담아듣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다툼이 있거나 사고가 있을 경우 스스로 해결해 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해답을 찾지 못할 문제에 봉착할 때는, 솔로몬의 지혜를 찾기 위해 두루 진력한다. 또한 나의 모순이나 잘못을 직언해 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한편 면전에서 언제나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람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님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묻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나의 잘못된 행동이나 잘못된 말투 나 잘못된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내 잘못이 뭘까요?” 그런데 내 머리를 깨 우는 충고 한마디가 날아 들어온다. “나는 엄마다.” 머리에 스쳐 멈추게 한 문장이다. 일하는 것을 첫째로 치부하고 아이들을 그 뒤에 두고 있었던 것이 었다. 돈만 보고 있는 모습이 지금의 나라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정신이 번 쩍 들었다.

나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원래 난 돈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내 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돈을 마 련하기 위한 일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돈을 좇는 꼴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한편 중간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평범하게 사는 삶이 어렵다. 그렇 지만 삶에서 소홀했던 것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생기면, 그런 삶이 가능하다 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엄마’라는 말은 성공한 엄마에게는 뿌듯한 단어이고, 엄마 노릇이 부족한 엄마에게는 가슴 메어지는 단어가 아닐까! 적극적인 엄마 노릇이 필 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공한 여자들은 가정을 완벽하게 돌아보지 못 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가족의 지지 없이는 여자의 성공은 그만큼 힘겹게 마 련이다. 한편 성공한 여자가 성공한 엄마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공한 여자가 아름다울까? 성공한 엄마가 아름다울까? 깊이 생각에 잠 겼다. 성공한 엄마가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길이다. 더군다나 직장맘, 워킹 맘이라면 엄청난 일들을 병행해야 한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육아와 집안일은 해방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직장맘, 워킹맘은 우울할 시간도 없다. 그만큼 바쁘다는 이야기이 다. 내 마음처럼 내 뜻처럼 잘 되지 않는 육아와 집안일은, 아이를 키우는 엄 마라면 모두 알 것이다.

난 성공을 꿈꾸는 여자이지만, 완전한 가정을 꿈꾸는 엄마이기에, 적당히 천천히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난 아직도 몹 시 서툰 엄마이다. 엄마의 역할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

부모 자격증이나 엄마 자격증처럼 부모 면허증 같은 것이 있다면, 좀 더 체계 적으로 아이를 키울 지식을 쌓았을 터인데 말이다.

무면허인 엄마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서서히 아이가 원하는 엄마에 다 가가는 중이다. 따라서 지금은 아이와 같이 나도 성장해 가고 있다. 이런 맥 락에서 당신도 돈만 좇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 실에 사는 것의 만족은’ 오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비롯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럴지라도 엄마의 길은 절대 녹록지 않으며 몹시 힘들고 버 겁다. 하지만 오늘도 굳세게 파이팅 하는 엄마로 우뚝 서고 싶다. 엄마는 강하다.

비판의 소리를 듣는다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는지 먼저 적어 보길 바란다. 이런 경우 대부분 타인의 눈으로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판단하여 단정 짓기 때문이다. 나에게 솔직한 글쓰기가 가장 힘이 세다. 욕심 을 채워진 자리에 솔직한 글쓰기로 노트에 욕심을 내려놓으면 된다. 비판을 받아들이고 행동하지 않으면 균열이 안 생긴다. 부딪히는 것은 실용성이 떨어 진다. 나는 노트에 버린 글들로 객관적일 수 있었으며 평정심을 찾게 되었다.

비판의 소리 방향이 사람을 좁아 보이게 하고 외면당할 위험성이 도사리 고 있다. 너무 윤리적인 측면을 추구하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신도 그 함정에 빠져 혼란을 겪게 마련이니,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때론 무슨 얘기인지 헷갈려 할 때도 있다. 속상함을 글로 토해낸 솔직한 글을 점검하면 강력한 힘이 있다. 인간관계에 서 자주하는 실수를 방지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다르다. 생김새도 모두 다르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사람도 없다.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없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지만, 다름을 인정하면, 타인의 비판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솔직 한 글로 적었는데도 아니라면 그것은 내 생각에서 지워도 된다. 나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 사람의 과제이다. 걱정할 일이 아닌 것 이 된다. 이미 내 눈이 아닌 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연습을 글로 적어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은 무조건 ‘타인의 눈으로 점검해 보자’이다. 나보다 상대를 먼 저 떠올린다는 말이다. 나를 점검하고 솔직한 나를 글쓰기로 만나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상대방과 통한다. 생활 속에 수많은 일이 있어도, 당신의 변함없 는 진리에 지혜가 함께 녹아있기에 백발백중이다. 글을 쓰기 전에 착각했던 것들이 참신한 시각으로 솔직하고 힘이 센 진심 어린 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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