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위대한 엄마가 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느 집에나 있는 엄마지 만, 나에게 엄마는 위대한 존재다. 남편의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파산하게 되었다. 살고 있던 집에서도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해야 했다. 집이 없었기에 나의 짐들은 이삿짐 창고에 보관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 야 할지 몰랐다. 결국엔 못난 딸이 되어 엄마한테 갈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부산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지만, 아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며 애써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어도, 궂은일이나 험한 일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신 다. 엄마한테 부산으로 간다며 전화를 드렸다. 부산 엄마 집 근처에 집을 얻 자니 나에겐 돈 한 푼 남아 있지 않았다. 빚만 지고 무작정 가고 있었다. 엄마 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나오신단다. 나보고 30분 안에 은행 볼일 을 끝내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그럴 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집 얻을 돈을 주신다고 은행으로 나오라 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속삭이셨다. 이건 너와 나의 비밀로 하자고 그러 셨다.

그동안 나는 엄마한테 돈을 염치없이 많이 가져갔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서 내려온 딸을 위해, 또 돈을 내어주신 것을 다른 형제가 알면, 엄마도 나도 마음이 불편할 터이니,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하셨다. 형제지간이라도 돈 앞 에서는 유치해진다며, 꼭 비밀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기죽지 말고 지금부 터 더 열심히 살면 된다고, 이젠 힘들게 살지 않을 것이고 내 딸도 이젠 자식 한테 힘든 모습 보이며 사는 건 안 된다고, 엄마는 애써 촉촉이 눈물을 감추 며 말씀하셨다. 내가 그랬듯이 나의 엄마도 눈물을 삼키셨다. 마음이 답답했 다. 죄송한 마음도 같이 들어 울어버렸다.

자판기 커피 한 잔 값 100원이 아깝다며 그냥 물을 대신 마시고 차비가 아깝다며 2시간 거리를 걸어 다니신다. 그렇게 모은 돈이라는 것을 알기에, 난 더욱 눈물 범벅이 되었다. 마음이 절여졌다. 이렇게 엄마는 모든 걸 주고 도, 더 주지 못해 이것뿐이라며 미안해하셨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가장 소 중한 나의 어머니가 망연자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셨다.

힘들 땐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야 한다. 제일 불쌍 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마음에 상처를 내려 놓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내려놓지도 못하고, 상처를 말도 못 하고, 안고 갔 을 때의 심리적 고통은 엄청나다. 내려놓고 마음을 후련히 털어내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내려놓을 때 위로를 통한 변화가 온다. 엄마와 비밀이 이것으 로 공개되어 버린 셈이지만, 난 그날 이후 생활비를 쪼개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적금을 들었다. 만기가 되면 또 적금을 들었다. 푼돈 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목돈을 모으는 것뿐이었다. 작은 목돈이 마련되 면, 그 돈을 들고 부동산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총알같이 부동산으로 가서, 미리 찜해놓은 집을 둘러보았다. 나의 점심 식사는 부동산 쇼핑이었다. 내가 꼭 성공해서 빚도 갚고, 엄마한테 받은 것 이상으로 벌어야 한다는 마음 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모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사람은 엄마이지만, 표현을 못 하고 살았 다. 배움이 짧은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올바른 가르침으로 나를 완성하려 했 었다. 엄마는 힘들고 아픈 나날이 많더라도 감사해야 하며,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주위를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받은 나 누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비슷한 아픔은 나의 경험을 공유하며 위로하였다.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고 싶어 봉사도 시 작했지만, 난 아직도 멀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처럼 좋은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이 건강해지는 나의 힐링이라고 해 도 될 것이다.

과거를 집착하거나 미래를 위해서만 살기보다는, 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지자. 이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야 한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 늦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감사하자. 그것이 행복이다.

빚을 접하지 않다가 빚을 접하니, 불안으로 타들어 갔다. 빚을 피하는 방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갇혀 꼼짝할 엄두도 못 냈다. 그냥 내 몸 이 부서지는데도 몸을 혹사하는 것만으로 모든 빚을 허락한 것이었다.

돈 벌어 빚 갚는 데에 온정신을 쏟아부었다. 잠 잘 시간도 사치였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웠던 적도 있다. 사흘 정도 지났을 무렵, 난 응급실에 누 워있었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어떤 고마운 분이,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했다. 눈뜬 나에게 “정신이 드세요? 병원 근처에서 쓰러지셔서 다 행이었어요”라고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말해주어 내가 기절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을 살피지 않았던 터라, 결국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 있었던 것이었 다. 참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무조건 빚 갚기 위해 노력해야 행복이 온 다고 믿었다. 결과로 나 자신에게 증명하려 했다. 미친 듯이 화력으로 뛰었 다. 결국 실패로 나에게 전가된 2억의 빚은 없어졌고, 지친 내 몸은 타고 남 은 재가 되었다.

깊이 깨달은 것은, 나중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세월 다 보낸다. 나중에라는 말은 너무도 어리석은 변명이다. 지금 이 시각이 내가 가 질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은 놓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뭘 그리 대단한 걸 하겠다고 이렇게도 멀리 돌아왔는지? 많은 생각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이 온다. 곧 후회로 남는다. 억지로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

힘들수록 나는 혼자 내가 썼던 시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소 리 내 울고 말았다. 언젠가는 그냥 넘어갔던 문장 하나에 사건 하나에, 참아 왔던 울음이 쏟아져 내렸다. 어느 정도 위안이 될 사람한테서 울게 된다. 뜻 하지 않은 곳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면 곧 후회하게 되므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사람에게선 울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 크게 울어버리는 것 같다.

나는 글쓰기로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울음을 터트리고 고통을 삼키며 스 스로 일어선다. 누군가와 위로하며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디에 이 야기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나만의 글을 쓰면 된다. 당신의 일상을 기록해 보아라. 소소한 일상으로 힐링이 된다. 일상에서 점차 삶 전체를 쓰면, 힐링으 로 더 큰 존재가치로 성장한다. 옛날 기억 아픈 것 되새길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가 나의 인생 최고의 날이라 여기며, 즐겁게 살자. 아등바등 살 다가 즐기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후회이다. 허망할 뿐이다. 금방 늙는다. 젊 을 때 즐겁게 가족들과 즐겨라. 젊어서 노세란 말도 있듯이 늙으면 힘들다. 사는 게 힘든데 팔자 편한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늙으면 더 힘들다. 다리에 힘 있을 때 다녀라. 다리에 힘 빠지면 다니고 싶어도 즐길 수 없다.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틀에 박힌 소리 라 하더라도 건강을 잃어보고 나니, 다리에 힘 있을 때 여행도 다녀야 한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인생 한 번씩은 즐기자. 좋은 경 험을 하며 인생을 힐링하며 사는 건 어떤가? 건강할 때 쓰는 글도 있고, 아플 때 쓰는 글도 있고, 모든 일상의 글쓰기는 충만한 경험이자 힐링이다. 글쓰기 는 나에게 불같은 사랑보다 온돌 같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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