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용 전라북도 농축수산식품국장

필자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어느 시기에 해외에 나가 생을 마감하는 독일인의 삶을 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복지가 잘 되어있다는 독일이지만 정부가 주는 연금만으로 노인요양보호기관에서 마지막 삶을 살기에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가치가 낮고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시아 국가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그 나라의 요양보호기관에 들어가 돌봄서비스를 받다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민이라하면 박사학위와 같은 학업이나 더 나은 직장, 혹은 더 나은 삶의 여건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러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바라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위해 떠나는 서글픈 여행인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 속에서 인터뷰에 응한 독일인은 마지막 삶을 자신의 고향에서 보내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마감하게 되는 자신의 삶을 얘기하며 울먹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이 내재되어 있나 보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얘기하고 있는 독일인의 삶이 결코 남의 얘기만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시기인가 우리나라에서도 마지막 삶은 요양병원에서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 된 것이다. 우리의 부모가 그러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또 그렇게 되리라. 필자는 간혹 생각해 본다. 지금 직장에서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먼 훗날 요양병원 병상에 함께 지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말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하다가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농촌마을은 좀 달리 할 수 없을까? 마을이라는 일정한 공간에서 평생을 함께 어울려 지내고, 힘겨운 농사일을 함께 했던 어르신들이니 마지막 삶이나마 내게 익숙한 마을에서 보내다 갈 수 있는 방법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이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을 바꿔보는 것이다. 

 요즘 마을회관에 가면 아침은 각자 간단히 먹고서 점심, 저녁은 같이 모여 식사도 하고, 방에 둘러앉아 남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지면서 마을회관에서 서로 의지하며 보내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멀리 사는 자식들로서도 그렇게 마을회관이라도 늘 나가신다면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인다고도 한다. 

 이러한 마을회관을 거동이 불편하신 동네 어르신들이 쉽고 편리하게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접근 가능하게 이동로도 정비하는 것이다. 또 마을회관 안에 들어오면 거실, 부엌, 화장실, 방안을 휠체어로 이동해도 괜찮은 공간구조로 확 바꿔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관 출입구 바닥도 경계를 없애고, 방 문턱도 없애야 한다. 화장실도 휠체어를 타고 들고 날 수 있도록 출입구도 넓히고 내부 공간도 정비해야한다. 식사 때마다 번거롭게 밥상을 꺼내어 펼 필요가 없도록 식탁도 놓고, 앉아서 쉬는 공간도 쇼파나 의자로 바꿔주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여력이 있어 혼자 움직일 수 있다면 잡고 걸을 수 있는 안전봉도 실내 곳곳에 연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방 한켠에는 병원 입원실처럼 병상 침대를 놓고 커튼으로 구획을 나눌 수 있게 공간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병원에서 치료는 받고서 말 그대로 요양보호를 받는 경우라면 마을회관에서 같이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으며 귀에 익숙한 한 동네 사람들의 오가는 말소리라도 들으며 누워있다면 그래도 마음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도시와 농촌이 융합되어가고 상생 발전의 길을 찾아나서는 도농융합상생문명의 시대에 맞춰 우리의 농촌마을은 참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하고, 또 그렇게 기대되고 있다. 외롭지 않게 사람이 찾아오는 농촌으로, 농가의 소득 확대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공간으로, 훈훈한 정을 바탕으로 공동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말이다. 

 2020년 올해에는 농촌에서 평생 고단한 삶을 살다가 그 삶의 마지막을 내 마을에서 지내고자하는 애절한 소망을 실현할 수 있는 마을의 표본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꼭 이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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