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2일, 故서지윤 간호사의 1주기 추모식이 그녀의 직장이었던 서울의료원에서 진행되었다. 고인의 사망은 진상대책위원회에서 그 원인이 ‘태움’이라고 규정지어졌다. 또한 진상대책위원회는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권고안을 발표하였고,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민기 전 서울의료원장이 사임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서울의료원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어 전 병원으로 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희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진상대책위의 권고안이 발표된 것은 지난 9월, 그러나 해가 바뀐 이 시점까지 시행되고 있는 사항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유족과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의 주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족과 시민대책위에게 3개월 안에 권고안 시행을 약속하였지만, 현재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장의 사임뿐이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간호사의 처우개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저 상징적인 사임 말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서울의료원 혁신대책위원회(이하 혁신위) 3차 회의 결과 보고’를 보면, 혁신위에서 “인과관계가 정확하지 않으니 관련 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지난 11월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서 권고안까지 발표된 사항을 내부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혁신위는 진상대책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서울의료원 측에서 의료원 고위급 인사와 서울시 공무원, 변호사 등 13명으로 꾸린 단체이다.
서지윤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그의 사망 원인이 ‘태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은 지난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함께 끊임없이 외치고, 알려서 얻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故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원인과 더불어 간호사들의 태움에 대한 그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그동안 쉬쉬했던 간호사의 자살의 원인이 ‘태움’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결론을 해가 바뀌기도 전에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혁신위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진상대책위에서 태움으로 결론지은 내용 중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일부 무혐의를 받은 부분이 있다, 가해자가 분명치 않다, 서 간호사에게는 태움 과 관련 없는 개인적 스트레스도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태움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상대책위에서 권고한 ‘추모비 설립’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태움으로 인해 한 간호사를 사망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오랜 조사를 통해 나온 결론이었고, 그에 대한 대책인 권고안까지 나온 사안이다. 태움으로 인해 간호사를 사망하게 만든 병원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모습과 이미 나온 결론을 태움이 아니라고 억지를 쓰는 모습 중 국민들은 어떤 모습의 병원을 더 신뢰할 수 있을지는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세계 역사에서 보아왔다. 유태인 학살의 죄를 시인하고 끊임없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 독일과 식민통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모습이 그러하다. 서울의료원이 어떤 모습을 택할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이후의 모습들을 알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소중한 생명을 너무 많이 보내왔다. 그들을 두 번 죽게 하지 않는 것 또한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