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2일, 故서지윤 간호사의 1주기 추모식이 그녀의 직장이었던 서울의료원에서 진행되었다. 고인의 사망은 진상대책위원회에서 그 원인이 ‘태움’이라고 규정지어졌다. 또한 진상대책위원회는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권고안을 발표하였고,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민기 전 서울의료원장이 사임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서울의료원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어 전 병원으로 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희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진상대책위의 권고안이 발표된 것은 지난 9월, 그러나 해가 바뀐 이 시점까지 시행되고 있는 사항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유족과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의 주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족과 시민대책위에게 3개월 안에 권고안 시행을 약속하였지만, 현재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장의 사임뿐이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간호사의 처우개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저 상징적인 사임 말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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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데 덮친격으로 ‘서울의료원 혁신대책위원회(이하 혁신위) 3차 회의 결과 보고’를 보면, 혁신위에서 “인과관계가 정확하지 않으니 관련 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지난 11월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서 권고안까지 발표된 사항을 내부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혁신위는 진상대책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서울의료원 측에서 의료원 고위급 인사와 서울시 공무원, 변호사 등 13명으로 꾸린 단체이다.

서지윤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그의 사망 원인이 ‘태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은 지난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함께 끊임없이 외치고, 알려서 얻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故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원인과 더불어 간호사들의 태움에 대한 그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그동안 쉬쉬했던 간호사의 자살의 원인이 ‘태움’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결론을 해가 바뀌기도 전에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혁신위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진상대책위에서 태움으로 결론지은 내용 중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일부 무혐의를 받은 부분이 있다, 가해자가 분명치 않다, 서 간호사에게는 태움 과 관련 없는 개인적 스트레스도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태움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상대책위에서 권고한 ‘추모비 설립’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태움으로 인해 한 간호사를 사망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이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오랜 조사를 통해 나온 결론이었고, 그에 대한 대책인 권고안까지 나온 사안이다. 태움으로 인해 간호사를 사망하게 만든 병원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모습과 이미 나온 결론을 태움이 아니라고 억지를 쓰는 모습 중 국민들은 어떤 모습의 병원을 더 신뢰할 수 있을지는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세계 역사에서 보아왔다. 유태인 학살의 죄를 시인하고 끊임없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 독일과 식민통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모습이 그러하다. 서울의료원이 어떤 모습을 택할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 이후의 모습들을 알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소중한 생명을 너무 많이 보내왔다. 그들을 두 번 죽게 하지 않는 것 또한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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