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출판문화협회 윤철호 회장

최근 EBS의 어린이예능 프로그램에서 미성년자 폭행과 욕설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프로그램의 유튜브 영상에서 성인 출연자가 미성년 출연자에게 폭행을 가하고 언어 성희롱과 욕설을 하는 장면이 가감없이 방송되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EBS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의 전면 교체와 책임자 보직 해임, 대국민 사과 등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번 EBS의 논란은 프로그램 출연자 선정 과정의 개선이나 미성년 출연자의 보호 차원에서만 수습될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시청자들은 EBS의 교육용 콘텐츠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즉 이번 사태는 EBS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흥미 위주의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린 나머지 공영 교육방송사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 미디어 학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EBS 교육방송의 정체성을 버린 사건”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현행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르면, EBS 설립의 기본 목적은 ‘학교교육 보완’과 ‘국민의 평생교육 및 민주적 교육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EBS는 그동안 설립 목적과 배치되거나 전혀 무관한 수익 사업에 과도하게 몰두해 왔다. EBS 수능연계 정책을 등에 업고 수능교재 제작·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홈페이지를 통해서 고가의 유료 강좌와 자체 제작한 학습서 판매에도 골몰해 왔다.

최근 EBS의 행보를 보면, 본업인 교육방송 사업보다 출판·광고·캐릭터 사업 등 부수적 수익 사업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재 EBS는 자사의 캐릭터 ‘펭수’의 인기를 발판 삼아 캐릭터 굿즈와 라이선싱 사업 등의 수익 사업을 확장하느라 분주하다. 방송법의 헛점을 이용해 방송 프로그램을 쪼개서 유사 중간광고인 PCM(프리미엄 광고)을 삽입하는 편법도 쓰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 EBS는 성인 및 어린이 교양 단행본 편집자 채용에까지 나섰다. 이는 EBS가 수능교재 시장 독점에 만족하지 않고 교양서 단행본 시장으로까지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EBS 상업출판에 대한 출판계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상업적 출판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모양이다.

EBS의 출판사업은 「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한국교육방송공사 정관」에 명시된 ‘부대 사업’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7조(업무)에는 EBS가 주요 업무인 텔레비전·라디오·위성 등의 교육방송과 방송시설 설치·운영, 프로그램 제작 및 공급, 교육 관련 행사, 교육방송에 대한 연구 등을 포함한 “업무에 부대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정관」 제28조(업무)에서 규정한 ‘부대 사업’에는 “출판 및 음반, 테입의 제작 배포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한국교육방송공사법」 하에서는 EBS가 교육방송 프로그램 제작 등의 ‘본업’에 “부대되는 사업”으로서 출판사업을 비롯한 각종 수익 사업을 마음껏 벌일 수 있게 되어 있다. EBS의 전체 재원 중 공적 재원의 비중이 약 26%(2018년 기준)에 불과해 상업적 재원 마련에치중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EBS가 공영 교육방송사의 역할과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 무작정 용인될 수는 없다.

EBS는 펭수의 성공을 홍보하며 상업적인 어린이책 출판, 더 나아가 단행본 출판까지 진출을 시도할 때가 아니다. 어린이책, 단행본 분야에서 많은 민간 출판사들이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데 굳이 공적 지원을 받는 교육방송이 진출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교육방송을 만든 근본 취지를 되돌아보며 바람직한 교육방송의 길을 가고 있는가를 성찰할 때이다. 현재 EBS는 기본 업무인 교육방송 제작보다 부대 사업에 더 치중하는, 본말이 전도된 사업 행태를 보이고 있다. EBS는 과도한 수익 사업 기조를 버리고 교육방송을 담당하는 공영 방송사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EBS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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