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나한테의 글은 연습장이다. 인생을 연습장에 낙서하듯 써 내려가는 낙서장이기도 하고, 아픔을 토해내며 힐링하는 연습장이기도 하다.

목적이 있어 처음부터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 말로 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내 삶을 그대로 펼치는 낙서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만족하는 글이었다.글쓰기는 적어도 나에겐 자기만족 같은 거였다. 목적이 있었든 없었든 자기만족의 글이 나에겐 중요했다. 누구에게 공감 받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기에, 마음껏 끄적이고 스스로 위로받는 고백 같은 글을 쓰면서 아픔이 치유되기도 했다. 그랬다. 글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글을 쓰는 동안 아프기도 하고 고통이 있기도 했지만, 글을 쓰면서 아프기만 하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글을 쓰고도 글이 완성되고도 아픔이 아픈 상처로 있었다면, 난 글쓰기를 더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첫 번째 한 행동이었다. 이어서 그 일이주는 의미를 찾는 것을 하였다. 그 속에 의미의 감정을 적어 넣었다.

반복해서 그렇게 하였더니 나쁜 감정들이 글쓰기로 정복되고 있었다. 오로지 나 혼자 보는 것이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었기에 더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글쓰기에 대해 배운 적도 없다. 하지만 글쓰기가 내 삶을 진정시키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복잡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게 꾸밈없는 글쓰기는 낡은 종이 위의 낙서에 불과하지만, 글을 쓰게 한 이유가 되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쓰기를 고집했더라면, 낙서에 불과한 나의 글은 쓰레기라고 생각했다면, 한 글자도 적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낙서로 시작한 글쓰기로 시인이 되었으니,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첫 만남이 어려운 만큼 첫 글쓰기도 어렵기 마련이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지금 글쓰기를 중단하고 잠시 쉬어라. 계속 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쓰고 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쓰고 만다. 억지
로 쓴 글과 여유 있게 쓴 글은, 분명 글로 완성됐을 때 다르다.

내가 만족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글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심장이 계속 뛰게끔 허락한 것이 아침 글쓰기 덕분이라 여긴다. 계획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해 불안했었고,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후퇴하는 것 같아 삶을 포기하려 했었다. 자살을 생각했고, 시도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살 통계로 보면 자살률은 남자가 높지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자살시도가 많단다. 여자들은 자살 충동을 느끼면 소극적인 행동을 하기에 자살시도로만 머물지만 남자들은 자살 충동을 결심하면 적극적인 행동을 
하기에 자살로 즉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때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살아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나에게 글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쓴다. 상처를 받았을 때, 글을 많이 쓴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클 때, 너무 힘들 때 말이다. 글로 마음의 준비가 되기에, 작은 위로를 자신에게 보내고 만
족하면서 쓴다. 고요한 명상을 통해 내면을 되돌아보고, 계획된 삶을 용기 있게 펼쳐 나가며, 글을 적어나간다. 마음의 변화를 느끼면, 글을 지속해서 쓰는 것이 가능하다. 계속해서 모든 것을 체험하며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삶으로 살아간다. 계획했던 삶을 살아가며 매일 조금씩 성장해 간다. 멋있는 삶 속으로, 매일 글을 쓰며 행복해하면서…

우리에게는 한계가 없다. 우리는 한계가 없는 존재이다. 아침에 일어나야 겠다는 의식을 하고 잠이 든 후 아침은 거뜬했다. 의식으로 아침을 깨운다는 것이 가능했다. 의식 확장만이 답이다. 의지는 모두 의식에서 오는 것을 중년의 나이에 알게 되었다. 나는 시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끝에서 시작하고 있다. 끝에서 시작을 결심한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공 보장이 되었다. 

나는 잠이 많다고 생각했다. 쉬는 날은 잠이 모자라 쓰러지기가 일쑤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어졌다. 아침에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 하는 동기가 약했다. 막연하게 필요한 것 같아서 와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과의 변화는 전혀 다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회피 동기가 아닌 접근 동기가 필요하다. 동기를 찾으려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명확한 목표는 아침에 눈을 떼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기를 명확하게 가짐으로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 그동안 난 3~4시간 자고도 거뜬했었다.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시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항상 나를 시한폭탄으로 여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걱정의 아이콘이었다. 가족들의 생각과 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꿈만 꾸어서는 절대 내것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아침을 깨워 꿈을 현실로 만들어 멋지게 해내는 모
습을 아침 글쓰기를 통해 적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지만, 앞만 보고 힘껏 달려왔다. 아침 글쓰기를 한 것은 잘한 것 맞다. 욕망이 생긴 자리에 아침 글쓰기로 희망이 싹이 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동이 답이며, 글을 쓰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채워진다.

 
아침 글쓰기는 물음표를 마침표로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 대화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준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글을 써야 한다. 원하지 않으면 안 온다. 맞서야 한다. 인생은 도망가
도 결국 내 인생이며, 지금 힘들다면 버텨야 한다. 내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살아주지 않는다.

 
나를 바꾸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해봤다. 긍정적인 마인드, 미소 짓기, 먼저 인사하기, 사람들과 소통하기 등, 하지만 늘 조금 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내 모습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걸 난 아침 글쓰기를 통해서 알
았다. 뿌리부터 바꾸지 않고, 계속 나는 나뭇가지만 흔들었다. 왜 쓰는지 모르면 쓸 수 없듯이,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감이 오면 행동으로 바로 옮긴다. 그리고 깨닫게 된 미소, 긍정, 행복 이것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훈련이 아침 글쓰기 훈련이다. 하루 중 아침 시간이 가장 충만한 시간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기 때
문이다. 하루 중 글 쓸 시간을 오후나 저녁으로 잡게 되면, 일상의 예기치 않은 일들로 글쓰기는 자꾸 뒤로 밀리게 된다. 결국 글을 적을 시간은 만들지 못한다. 바쁜 시간에 끼어들 틈이 없다.

 
모든 사람이 하는 것들이 인생이고, 모든 일을 쓰면 글이다. 그것을 글로 채운 것이다. 내면의 생각과 일상의 행동들을, 감정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인생이 되기도 하고, 글로 표현된 인생이 되기도 한다. 결론은 글쓰
기다. 

우리 자신의 능력을 속이지 말고 믿어 보자. 우린 잘 할 수 있다. 해낼 자신도 있다. 난 못할 것 같다면서, 나 자신에게 무책임한 거짓말로, 편해지려 하지 말자. 좀 더 솔직해지자. 난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 보자. 더 자극
되어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안정하자. 그 삶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꿈을 키울 수 있는 보금자리로 치열한 아침을 보내길 바란다. 나중에 그러다 지나버린 청춘이 된다. 간절히 바랐던 것이, 결국 이뤄
진다. 강한 에너지로 미친 듯이 아침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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