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4)
[MISSIONARY]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4)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목사
  • 승인 2019.1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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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석학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임어당의 저서「속(續)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장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큰 나무에 날개가 무려 일곱 척이나 되는 큰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새를 잡을 마음으로 활을 들고 가까이 갔는데도 움직이지 않아서 살펴보았더니 이 큰 새가 바로 눈앞에 있는 버마제비라고 하는 먹이를 먹으려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더랍니다. 또 버마제비를 보니까 눈앞에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밤나무 숲 주인이 장자가 도둑인줄 알고 오해하고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 무엇에 가장 관심을 두고 사느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에 몰두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가 달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먼저 사람들의 눈에 안목의 정욕이라는 렌즈를 부착시켜 놓으려고 애씁니다. 그 사람이 그 렌즈를 계속 사용하고 바라보는 날은 어느 날 마귀가 목적한 대로 범죄하게 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도 마귀의 유혹을 받은 뒤 계속해서 선악과를 쳐다보면서 마음에 탐심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찾으라”는 말은 “계속 힘들여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위의 것을 찾고 누리려면 우리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위의 것을 찾을 때 무슨 역사가 나타납니까?

 

1. 위의 것을 찾을 때 ‘사는 길’이 열립니다.

본문은 왜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살리실 수 있는 분, 생명의 원동력을 유일하게 가지신 예수님이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찾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죽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2절 말씀대로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해서 안 됩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고 땅에 것에 계속 관심을 가지 다 보면 죽고야 맙니다.

가룟 유다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정도로 못된 배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능력 있고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점차 자기가 맡은 재정 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불평불만이 많아졌고, 마귀가 이를 알고 가룟 유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요13:12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바라보지 않고 은 30냥 자리로 봄으로 마침내 역사상 가장 더러운 배신자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인간이 되고만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의 것을 찾고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음으로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위의 것을 찾을 때 생명이 자라가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식물은 태양 빛을 받아야 강하게 자랄 수 있고. 태양 빛을 충분히 받은 과일이 맛이 뛰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빛 되시고 생명 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에 점점 강하게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에 성령님을 통해서 새 힘, 새 능력을 받아 점점 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이사야 40:31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어 독수리 날개 치듯이 자라날 줄로 믿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탐심의 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5:16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산 자는 이제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점점 그렇지 못하고 땅의 지체에 따라 매여 살면 결국 내려가는 삶, 결국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군사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100만의 병력과 9천 척의 선박들, 17만대의 차량들, 702척의 전함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2차 대전을 끝내는 중대한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이 수행되는 동안 연합군의 수장격인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기도실에 들어가 8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부하들이 상황보고를 하기 위해 급히 뵙기를 원했으나 그는 끝까지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8시간 만에 확신을 갖고 기도실에 나올 때에 상륙작전이 기적적으로 성공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의 지체를 죽이고 위에 것을 찾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올라가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위의 것을 찾을 때 열매 맺는 자가 됩니다.

식물이 계속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침내 가을이 되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날이 오는 것처럼 우리도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살면 하늘의 열매를 맺는 날이 옵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자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10절)

땅을 향해 살던 옛사람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늘에 향해 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에 끌리어 살던 옛사람이 이제는 성령에 끌리어 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새롭게 지음 받은 새사람의 삶은 보는 눈이 다르고, 마음과 생각이 다릅니다. 성도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새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답고 거룩한 새 옷을 입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땅에 있지만 위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위를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새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땅에 지체를 죽이고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찾읍시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음으로 마침내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어 가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지방에서 붕어찜을 아주 맛있게, 독특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붕어찜 장사를 하게 된 것은 그가 80년대 중반 쯤 어딘가에서 먹었던 붕어찜 비법을 천만원을 주고 사게 되면서부터입니다. 80년대에 천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천만원을 줬지만 몇 년 동안 붕어찜으로 2억원도 더 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엣 것에 투지하면 잃은 것 같지만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까워하면 현실만 위해 살면 지금은 좋은 것 같지만 밑빠진 독과 같이 어느 순간 다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며 위에 것을 얻는 데 최선을 다함으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케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