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국 칼럼] 마음의 그림, 입은 화가 생기는 문이요, 혀란 몸을 베는 도끼다.
[천병국 칼럼] 마음의 그림, 입은 화가 생기는 문이요, 혀란 몸을 베는 도끼다.
  • 천병국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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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하게 들어서 오히려 진부한 느낌마저 들지만 사람은 분명 '사회적 동물(존재)이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가 되어진 제일의 요인이 말의 효용성이었다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사회가 형성되고 문화의 창조와 전승이 가능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말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일컬어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소수의 무언승이나 특정인을 제외한 무돈 사람의 생활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입을 봉쇄당한 삶이란 상상 할 수조차 없다. 

소수의 무언승이나 특정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생활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입을 봉쇄당한 삶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옛날 입을 봉쇄당한 어느 이발사는 배가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으면, 가슴이 얼마나 틀올랐으면, 대밭의 땅 바닥에 입을 대고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요"했겠는가.

조선조 연산군은 만고 폭군답게 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켰지만 그보다 더 가혹한 것은 함구령이었다. 연산 자기 자신은 무슨 짓을 하든 상관 말고 백성들에게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표지쪽을 몸에 걸고 다니게 했다. 

"구시하지문 설시참신지부 " 

'입이란 화가 생기는 문이요, 혀란 몸을 베는 도끼다.' 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불에 달군 쇠도막을 밟고 다니게 했던 포락지형보다 더했으며 더했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는 참화였다. 

말이란 정신과 생활의 목록이요 지표이기에 H-하이네의 말과 같이 말로 인하여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불러 낼 수도 있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 말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 수도 있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르려 없앨 수도 있다. 

'어야' 말 다르고 '아야' 말 다르다는 속담과 같이 지혜로 운 자의 말은 은혜로워서 천냥의 빚을 갚고도 만냥의 우의를 증진한다. 그러나 우매한 자의 입은 망신의 굴레가 되기도 한고 영혼을 가두는 그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십여 년전에 지혜로운 말과 우둔한 혀의 실례를 경험한 바가 있다. H고등학교 K선생은 그의 우람한 체구와는 달리 화술이 능란하고 언사가 부드러워 호감을 받았다. K선생이 학교 주임으로 있을 때 문제 학생(?) 하나가 밤중에 그의 대문을 때려 부셨다. 다음 날 K선생은 그 학생을 교무실로 데리고 와서 말문을 터 보려고 시도했으나 코만 씩씩 불 분 묵비권을 행사했다. "OO 야 , 이제 부터 선생님은 월급을더 타야 되겠지?" 그 때 그 학생은 K 선생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뜻인지 어안이 벙벙했던 모양이다. 

"OO야 생각해 보자 , 선생님 월급 조금 타서 여섯 식구 먹여 살리랴 대문 고치랴, 어디 지금 월급 가지고 되겠느냐?"그 말은 들은 학생은 가타 부타 한마디 않고 교무실을 뛰쳐 나가버렸다. K교사가 퇵느하여 집에 가 보니 어느새 대문은 새롭게 고쳐져있었고 뒷마루 한쪽에 그 학생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H여고 P선생은 몸이 바짝 마른데다가 얄팍한 입술을 타고 나온 말끝이 솔잎처럼 날카로워서 말벗이 조금은 귀한 편이었다. 

어느날 P선생이 어느 교실에 들어가 출석부를 펴고 1번뿌터 끝번가지 호명을 마치고 출석부를 덮으려는 순간 세 학생이 동시에 일어서며 "선생님, 왜 우리 이름은 안 불러요?" 하는, 따지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P교사가 출석부 끝 부분ㅇ르 봤지만 그들의 이름이 업기에 "너희들은 호적에 안올랐어" 하고는 출석부를 덮어 버렸다. 그순간 세 학생은 고개를 책상에 떨군 채 한 시간 동안 울다가 쉬는 시간을 이요하여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그들은 고아원에 수용되었던 학생들로 그 전날 전학을 왔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출석부에 미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P선생은 아무런 생각 없이 출석부를 호적으로 지칭했지만 호적이 없었던 그들의 아픈 데를 찌른 결과가 되었다. 그 학생들은 다음날 부터 결석을 하다가 두어 주 후에 학교에 돌아 왔지만 P선생은 그로 인한 상당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다. 

K선생처럼 지혜로운 말은 은혜롭고 ,P 선생처럼 우둔한 혀는 화를 자초하게 되었으니 한 방울의 물이 우유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된다고나 할까.

 

나는 평소에 과묵한 편이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무심하다는 오해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내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 이런 오해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내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은 분명 내 말버릇에 지울 수 없는 흠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과묵할 바에야 희소 가치나 높게 매기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 성격탓인 모양이다. 

집에서 아이들의 잘못을 발견하면 즉석에서 꾸짖지 않고는 베기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몇 달도 참고 몇 년도 참는다는데 나는 단 하루도 못 참는 것을 생각하면 나이는 먹었어도 수양은 풋것 그대로인 모양이다. 

[춘추 좌전]에 '언신지문야'란 구절이 있다. 말은 자기 몸의 무늬, 즉 '말을 잘하면 자기를 곱게 장식한다'는 뜻이리라.

'말은 마음의 거울'이란 영국 속담이 다시 생각난다. 나의 말 버릇으로 미루어 내 마음의 그림을 그린다면 직선, 그것도 잣대를 대고 그은 것이 지반장이요, 그 나머지 절반이 투박한 옹기 그릇이나 될 것이며 그 나머지가 여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