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결혼을 하니 ‘엄친아며’가 등장하다.
[기자칼럼]결혼을 하니 ‘엄친아며’가 등장하다.
  • 윤슬 고부갈등전문기자
  • 승인 2019.06.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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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자라면서 꼭 한번씩 듣는 말이 바로 ‘엄마 친구 아들은’ 이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엄마 친구 아들들은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뭐 하나 빠지는게 없는지, 늘 비교를 당할 때마다 보란 듯이 나를 루저로 만들어 버린다. 성인이 되고 내 살길을 찾아 살기가 바빠져서 부모님과의 대화가 뜸해지자 이 ‘엄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신랑의 어머니가 나에게 ‘엄친아며’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바로 ‘엄마 친구 아들 며느리’ 줄여서 ‘엄친아며’ 라고 해보겠다. 이 ‘엄친아며’라 함은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시시때때로 선물도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여행도 다니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살갑게 애교 많게 지낸다고 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엄친아’처럼 한번도 본적 없는 ‘엄친아며’에 대해 오늘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이 아니라 ‘엄마가 상상하는 아들’인 것 같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진짜 겪고 있는 내 친구들 중에는 그런 친구들이 극히 드문데, 어떻게 엄마 주변에는 다들 그런 완벽한 아들만 존재하는 것인가? ‘엄친아며’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어머니와 그렇게 지내는 며느리를 찾기가 극히 드물다. 극히 드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떻게 시어머니 주변에는 다들 그런 완벽한 며느리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것 또한 ‘시어머니가 상상하는 며느리’가 아닐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한번 해보자. ‘엄친아’ 말고 ‘내친엄’이라는 말을 만들어 보자면 ‘내 친구 엄마’. 이 엄마는 공부해라 강요하지도 않고, 용돈도 많이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 주는 엄마이다.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엄친아’를 이야기 할 때 나는 ‘내친엄’을 이야기 해본다고 가정해보자. 서로 본인들이 원하는 자식상, 엄마상을 만들어서 그 상상 속의 자식과 엄마를 비교하며 서로를 깎아내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부정하는 삶이 얼마나 서로를 병들게 할지 눈에 보듯 선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엄친아’는 없다. 결국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자식상을 ‘엄친아’로 둔갑시켜 내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닐까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부모 완벽한 자식, 완벽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조차도 실수를 하고 그릇된 판단을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인생을 처음 사는 우리가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또한 명심하자. ‘엄친아며’는 없다. 내가 바라는 며느리가 되어주기를 원하기 보다는, 그냥 아들의 배우자로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길 응원해 주는 시어머니가 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