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기자칼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 윤슬 고부갈등전문기자
  • 승인 2019.05.21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픽사베이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 속을 들여다 보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이 항상 나온다. 이 말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가슴을 짓누르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해 보려 한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모두 축복이다. 아름답고 숭고하고 경이로운 일이고 기쁨이자 희망이 되는 일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아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그 어느 하나 엄마 아빠의 보살핌 없이 스스로 클 수 없다. 그렇기에 밤 낮 없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시기에 맞는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이것은 자식을 낳은 부모의 당연한 역할이자 의무이고 책임이다. 아기를 낳아 키우다 보면 부모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밥 먹듯이 생긴다. 이럴 때 내 자신이 ‘희생한다’ 라고 계속 느끼게 되면 거기서부터 오는 박탈감에 ‘너(아이) 때문에’라는 미움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보상심리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보상심리가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기본적인 마음을 잘 조절 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을 듣고 자란 우리 세대는, ‘너 때문에’ 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구나 라는 것을 계속 쌓아 두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부모님에게 나를 이렇게 키워준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보다는 죄송한 마음을 들게 하여 죄책감을 갖게 하고, 이 죄책감은 마음을 짓눌러 결국은 커다란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커다란 ‘마음의 빚’은 결혼이라는 정신적독립을 해야할 때 결정적으로 빛을 발하여, 상대방(배우자)으로 하여금 대리 효도를 하게 하고, 키워준 부모님에 대한 빚을 갚겠다는 일념으로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서 중심을 두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렇듯 부모에게 ‘마음의 빚’을 갖게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무서운 것임을 꼭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지금부터 당장 바뀌도록 노력하면 된다. ‘너를 낳고 너를 키운 일은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라는 것을 알게 하면 된다.

아마 지금 아이를 낳는 세대들은 부모에게 요구되는 ‘희생’이, 장차 아이에게 화살로 돌아갈 ‘보상심리’로 이어지기가 힘들 것이다. 이것은 세대차이에서 오는 갈등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지금은 ‘자식농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고, 그럴만한 사회적 환경도 되지 않기에, 아이를 낳으면 그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면 그 뿐이지, ‘꼭 장성하여 나의 노후를 책임져 달라’ 라는 의미로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부모의 책임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는 것부터 철저히 계획하고 계산한다. 그래서 딩크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를 뒷받침 해주는 이유이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모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되는 일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고 항상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태도를 가지고 아이를 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부모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그대들은 부모가 아니예요, 자식이예요.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키우는 일은 당연한 거예요. 우리도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할거잖아요. 우리도 똑같이 자식에게 마음의 빚을 물려 줄건 아니잖아요. 이제 그만 그 짐을 내려 놓아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