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는 경기에 나서기 전, 항상 짧게 기도를 하고 십자 성호를 긋는다. 그 모습은 흡사 중세시대 때 전장에 나가는 전사와 같다. 한 인터뷰에서 그 때 어떤 기도를 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김연아 선수는 “실수 없이 다치지 않고 연습한 대로 끝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답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메달을 따게 해달라고, 혹은 평소보다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 같았는데 그녀의 기도는 ‘무사히 경기를 마치는 것’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와 같은 의식을 치른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오늘도 무사히’다. 그리고 이 말이 누구보다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간호사들이다.

병원에서 일할 시절 근무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인계를 받기위해 탈의실을 나설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나갔다. 언제나 구호처럼 “오늘도 별 일 없길.” 이라고 말하면서. 병원이라는 곳은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작은 사고들은 물론이고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곳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출처 Pixabay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출처 Pixabay

간호사 출신 작가인 김현아 작가의 저서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네가 바로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로구나.”
수많은 간호사들이 나처럼 이 구절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저승사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자신의 환자를 잃어본 간호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는 전사가 된다. 평소에는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사람들이 병원에만 오면 피가 튀는 현장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뛰어 다닌다. 환자가 갑자기 구토를 하게 되면 급한 마음에 자신의 손에 토사물을 받은 경험 또한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를 3D 직업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을 하기 때문에 말이다. 게다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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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오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간호사들은 상당히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다. 2015년에 개정된 의료법 제2조에 명시된 간호사의 역할을 보면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간호판단’이라는 말은 간호사가 능동적으로 일하는 배경이 되어준다. 예를 들어 의사가 투약 오더를 지시했는데 그 오더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간호사는 그대로 투약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오더를 변경해야 한다.

때로는 환자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검사일정을 조정하는 것 또한 간호사의 몫이다. 물론 서로 잘 이해해주면 고맙겠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와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환자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곤 한다. 만약 당신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큰 불편 없이 치료받고 퇴원했다면 그 뒤에는 간호사의 노고가 숨어있음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 근무를 마치고 나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을 때가 많다. 특히나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정신적인 피로까지 더해져서 더 지치곤 한다. 내 환자가 죽었어도 간호사는 근무 중에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무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일을 하는 것 또한 간호사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이라는 전장에서 전사가 되었을 이 세상의 모든 간호사들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내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을 비추는 작은 별처럼 당신들이 있어서 오늘도 환자들은 안녕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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