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전자제품 같은 것은 가장 새것이고 좋은 것 같은 데 몇 개월 안 있어서 금방 구 모델이 되어 버리고 중고품이 되어 버립니다. 사진:픽사베이

요즈음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전자제품 같은 것은 가장 새것이고 좋은 것 같은 데 몇 개월 안 있어서 금방 구 모델이 되어 버리고 중고품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도 태어나서 성장하지만 곧 늙습니다. 남녀 간의 차이는 있어도 20대 초반까지는 몸이 성장하고 왕성합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되면 벌써 늙기 시작합니다. 20대 후반은 청년인 줄 알지만 사실은 노년기에 접어듭니다. 벌써 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후반만 되어도 피로 회복이 늦어집니다. 30대가 되면 배가 나오고 체중이 불어납니다. 40대가 되면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하얗게 세기도 하고, 50대가 되면 기억력이 아주 퇴보하고, 60대가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노쇠함이 급속도로 오게 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체질입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훈련하는 사람은 60이 넘어도 배가 나오지 않고, 체중도 늘지 않습니다. 25년 더 젊게 살기도 합니다. 70세가 되어도 45세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신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게으르게 사는 사람이 치매에도 걸리고 기억력도 쇠퇴하고 정신도 오락가락 하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며 자신의 일에 힘쓰는 사람은 갈수록 기억력이 더 새로워지고 사고력이 더 강해져서 빛나는 사람이 됩니다. 70이 되어도 기억력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폴 틸리히 같은 교수는 65세 정년이 되었을 때, 하버드 대학에서 그를 특별 교수로 7년간 계약하여 모시고 갔습니다. 계약이 만료된 72세 때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5년 계약을 하여 특별 교수로 모시고 갔습니다. 한국 나이로 78세가 되어서도 현직 교수로서 명강의를 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력도 나빠지는데, 부지런히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디모데전서 4:15)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대충 공부하면 평범한 학생이 되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학생은 굉장한 학생이 됩니다. 편한 대로 그냥 살면 보통 회사원이 되고 해고를 당하기도 하지만, 회사 일에 진력하는 사람은 해고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은 미래에 살고 노인은 과거에 산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말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청년 때보다는 장년 때가 더 낫고, 장년 때보다는 노년 때가 더 풍성하고 빛이 나게 됩니다. 평범하게 살면 미래보다 현재가 더 좋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미래는 점점 더 좋아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사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 자기 일에 근실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지금 밑바닥에 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발돋움하면 하나님께서 올라서게 하십니다. 진흙에 있는 사람, 먼지투성이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별같이 세워 주실 수 있으십니다.

존메이져 전 영국총리
John Major  전 영국총리 / Wikimedia Commons

1990년 총리로 선출되어 민주주의, 경제개발 등을 내세우고 7년간 총리로 재직했던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영국 런던 남부 지방의 빈민촌에서 가난뱅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곡마 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며 계속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26세에 구의원이 되고, 36세에 국회의원이 되고, 대처 수상 때에는 재무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0세인 1990년에 대영제국의 총리가 되어서 영국의 경제를 일으키고 국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있으라 할 때 나는 떠난다. 이제 나는 내 가정을 돌볼 것이다.”

곡마단 출신의 아들이 세계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따라가지 못할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 길이 열립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 회사원이 성실히 직장 일하는 것, 전공과목에 애쓰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성령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 벧후 3장 14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 또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원히 들어가 살 땅입니다. 거기는 잘 꾸민 신방처럼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신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남자는 실력으로 살기 때문에 못생겨도 괜찮습니다. 남자는 실력이 있으면 얼굴에 점이 많아도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얼굴에 점이 많은 한 분에게 아들이 “아빠, 아빠 얼굴에는 왜 이렇게 점이 많아요?”하고 물으니,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너 그 이유를 모르니? 아마 너의 엄마는 알 거야. 청년 때 내 인기가 굉장했지. 그때 아가씨들이 점을 찍어 놓아서 내 얼굴이 점박이가 된 거야.”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얼굴에 점이나 티가 너무 많으면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신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특별히 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자기 관리를 잘 해서 하얀 드레스와 어울리는 아름다움 모습으로 식장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주님의 신부처럼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벧후 3:11-13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 먼저는 거룩해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여성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 ecclesia)는 여성이고, 주님(the Lord)은 남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도록 우리를 단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외모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외모로 상대방인 사람은 기쁘게 할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거룩함을 단장해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베드로전서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고 의로움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고,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공짜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거룩은 다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지만 죄가 없어서, 깨끗해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많고 험한 우리지만,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는 정죄함이 없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인격 그리고 생활이 정말 거룩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말씀을 따라 살면 거룩해집니다. 기도하면 거룩해집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서는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의 가슴에도 성령의 소욕이 있는가 하면,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음란하고 싶고, 쾌락을 누리고 싶고, 방탕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거룩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지만, 성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기도를 따라 사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맛이 나고, 다 차려진 상의 밥도 내가 먹어야 배 부르듯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기도를 주셨지만, 우리가 부지런히 기도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고 말씀을 순종하려고 노력해야 거룩하게 됩니다./

전체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은혜로 살지만 자녀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등록금을 대주고 밥을 해 주고 옷을 사 주고 살 집을 준비해 주지만, 공부는 자녀가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 대신 공부해 줄 수 없고 입학시험을 쳐 줄 수 없습니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을 주셨지만, 우리의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그것을 상 위에 주지 않으셨습니다. 만나를 볶아서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를 사람이 가서 끌어 모아 볶아도 먹고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됩니다.

응답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에 은혜를 주시지만,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 발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 큰 만나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예배 시간에 내가 나와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집에 있거나 다른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만나를 받아먹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할 일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쓰면 달라집니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 좀 더 의로워져야지.”하고 마음을 먹어 보십시오. 그러면 확실히 성숙해 집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난처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아는데 막 살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한 여집사님이 앵무새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가 딱 한 마디 말만 했습니다.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Kiss me, please).” 혼자 있을 때는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이었지만, 손님이 왔을 때도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 라고 하니 ‘밤낮 키스만 가르쳤나?’ 할까봐 부끄럽고 난처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 집사님이 어떤 일로 목사님 사택에 갔습니다. 목사님 사택에도 앵무새가 있었는데, 그 앵무새가 여 집사님을 보더니,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인사입니까? 목사님 댁의 개는 짖을 때도 은혜롭게 짖어야 한답니다. 목사님 댁의 개가 점잖게 짖지 않고 방정맞게 짖으면 은혜가 없다고 목사님이 욕을 먹는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댁의 앵무새는 언제나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앵무새가 그 말을 배우도록 여 집사님은 목사님 댁의 앵무새를 빌려갔습니다. 목사님의 앵무새가 집사님의 앵무새에게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 집사님의 앵무새가 답을 했습니다. “나에게 키스해 주세요.” / 그러자 목사님의 앵무새가 기분 좋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군요.”

만든 이야기겠지만, 목사님의 새는 주인을 기쁘고 흐뭇하게 해 주었고, 집사님의 새는 주인을 난처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난처하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흐뭇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룩해야 됩니다.

그리고 거룩해지면 담대하게 됩니다. 겁나는 것이 없습니다.

잠언 28장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경찰이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나 의인은 ‘경찰들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나?’하며 담대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누구 앞에서나 담대합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담대합니다. 의롭고 거룩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지니 사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떨어지니 사자들이 뼈까지 부숴 먹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도록, 거룩해 지도록 노력하고 힘을 쓰십시다. 선악과 하나를 먹는데 5분이 걸리겠습니까? 10분이 걸리겠습니까? 선악과 하나를 즐기는데 도대체 몇 분간이나 걸리겠습니까?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그 몇 분간의 쾌락 때문에 한평생 엉겅퀴에서 헤매게 됩니다.

마귀가 우리의 거룩을 깨려고 주는 선악과, 꿀 발린 독이 든 떡, 그것을 먹는 순간은 좋지만, 그것을 마신 다음에는 강물 같은 진노가 오게 됩니다. 몇 방울의 쾌락을 마시는 것이 강물 같은 진노를 마시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면,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면, 이 세상의 일생도 든든히 서게 되고, 또 영원히 평안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길로 달려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또 우리에게 힘써서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라는 것입니다.

이 평강은 그냥 평강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누리는 평강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리드할 때 로마 시민권자는 어느 나라에 가도 든든하고 평안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 영국이 세계를 리드할 때는 영국 시민권자는 어디를 가나 든든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또 대접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들이 그렇습니다. 테러 사건으로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미국 시민권자는 어디에 가도 여유가 있고 세계 일등 국민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영광도 오래 가지 못했고, 영국의 흥왕함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미국도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위대함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거기의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담대하게, 든든하게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유를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우리의 과거를 보면, 숨 막힐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것 어떻게 하나? 아이고! 어떻게 하나? 아이고! 큰일났네.” 하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 31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오늘,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평안하려고 애써라. 그냥 평안해라.”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돈도 주지 않으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옷도 사 입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백만 원을 주면서 잘 먹고 잘 입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의 능력을 주셔서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

여러분 중에 세상적인 일로 걱정하는 분이 많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문 목사야,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김 집사야,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도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 20:19) 우리 주님께서는 늘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나 불안과 초조는 마귀가 줍니다. 그러므로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사탄아, 물러가라!”마귀를 물리치고 주님 곁에서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평강 가운데서 살라고 말씀한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살았습니다. 말씀만 그렇게 하고 자신은 덜덜 떨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헤롯 왕에게 잡혀 가 목이 잘리게 되어 있는 전 날 밤에도 감옥에서 평안하게 쿨쿨 잠을 잘 잤습니다. 왜입니까? “내일 헤롯왕이 나를 죽일 것이지만, 내 생명은 헤롯왕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살리시고자 하시면 헤롯왕을 죽이시고 베드로를 살리십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베드로는 죽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기에 평안했습니다. 헤롯왕만 생각했다면 덜덜덜 떨었겠지만, 주님을 생각하니 평안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길에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터져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으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힘써서 거룩함을 유지하시고, 늘 평안을 유지하다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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