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으로 근무하며 /사진:픽사베이
동장으로 근무하며 /사진:픽사베이

많은 사람들이 나는 바른 소리는 잘하고 아부는 할 줄 모르는 사 람이라 승진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승진후보자 명부에 올라 있었으나 몇 번이나 미끄러졌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목감동장으로 발령 받았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근무하는 곳마다 근무했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근무 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무슨 흔적을 남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장의 역할이 무슨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다만 지 역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주민들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매월 회의가 끝난 후에는 함 께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것이 전부였다. 활동을 하지 않는 주민자 치위원회가 마을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다. 주민자치위원이라는 자리가 마을의 유지라는 명함을 만들어 주는 자리가 아닌 마을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하는 주민자치 위원회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장으로 발령을 받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기보다는 작업복을 입 고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남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다니면서 술이 나 먹으면서 적당히 어울리기 보다는 주민들과 함께 주민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길거리 담장에는 온갖 낙서가 되어 있고, 술집 벽보들이 닥지닥 지 붙어 있어서 지저분하다. 이런 담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 좋겠 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민자치위원 중에 열정을 갖고 있는 분들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그라인더 작업을 하고, 하얀색 페인트칠을 했 다. 그리고 목감초등학교 선생님의 협조를 받아 학생들과 벽화를 그렸다. 전문 화가가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낙서가 사라지고 아 름답게 보였다.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 나눔회’를 구성했던 경험을 살려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자 치위원회에 목감동 이웃돕기회를 구성하자고 하자 대부분의 주민 자치위원들이 반대를 했다. 이웃돕기 모임을 만들면 자기들이 돈을 내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러분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테니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했다. 주민자치위원들을 설득하여 목감 동 이웃돕기회를 구성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관내에서 중탕 기를 제조하는 ‘(주)오쿠’ 사장님이 5천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5천만 원이 기탁되는 것을 보며 추진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매월 주민자치위원회 회의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보자며 작지만 한 가지 한 가지 시작해 나갔다. 실개천 살리기 사 업은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연과 수생식물을 심었더니 열 성적인 주민자치위원들이 스스로 가꾸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꽃밭도 만들고, 가로화분도 만들었다. 동장이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포괄사업비를 사용하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었다. 대부분의 동에서는 포괄사업비를 도로 포장이나 하수도 사업 에 사용하지만 나는 벽화그리기 사업의 재료를 구입하여 그림은 마 을 주민들이 함께 그리게 했고, 가로화분도 재료는 구입해 주고 작 업은 주민들이 직접 하도록 했다.

매년 워크숍으로 하루 나들이를 하면서 술을 먹고 노는 것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진행되어 왔지만 공부하는 워크숍으로 진행을 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시간 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서 우 수자원봉사자에게 수련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목감마을 소식지를 만들자고 했더니 대부분의 주민자치위원들이 반대했다. 소식지를 만들려면 제작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내용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걱정이 된다며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주민자치위원들에게 광고를 활용하면 제작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설득했다. 반대 속에서도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 나갔고 창 간호가 발행되었다. 제작비는 모두 광고비를 받아 제작했다. 주민 자치 위원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성과물로 나타나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민자치위원회가 변해야 한다 는 것에 동의를 하기 시작했다.

주민자치위원들을 실무형 주민자치위원회로 만들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주민자치위원들을 해촉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주민자치위원장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주민자치위원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내가 동 장을 근무하는 6개월 동안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부위원장 을 신임 위원장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6개월 동안 한 번 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을 위원장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고 반대를 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위원들은 해촉할 계획이라 고 했다. 욕은 내가 먹을 테니까 일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되도록 하자고 했다.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8명을 해촉 했다. 내게는 전화가 오지는 않았지만 새로 선출된 주민자치 위원 장과 간사에게는 항의 전화가 많이 왔던 모양이다.

물왕1통 희망마을 사업을 신청하여 선정되었으나 주민들의 참여 율이 저조했다. 통장도 주도권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 어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근무 시간에도 시간만 있으면 마을로 나가서 주민들 과 함께 나무껍질을 벗겼다. 통장과 함께 새벽에 일어나 산에 가서 솟대를 만들 나무를 베어오고 함께 다듬는 작업을 했다. 퇴근 후에 는 마을에 가서 9시, 10시까지 주민들과 함께 작업을 하다 함께 저 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시간이 지나자 참여자들이 한 명 한 명 늘었다. 나중에는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작업장으로 찾아와 함 께 작업에 참여했다.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일부 직위는 공모를 한다고 했다. 난 동장으로 발령을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발령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사발령에 내가 문화체육과장으로 발 령이 났다. 동장을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는데 하는 아쉬 움이 들었다. 동에서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았는지 주민들이 많이 서운해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주민들이 시장에게 1 년만 인사를 보류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청소과장을 하다가 다시 동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다시 정왕 3동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정왕3동은 목감동과 달리 주민자치위원 중에 직장을 가진 위원들이 많아 낮에 회의를 하지 못하고 저녁에 회의를 한다. 회의 후에는 저녁식사를 하는데 밤 11시까지 술을 마 시는 경우가 많았다. 분과위원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동주민센터 내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프로그 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위원들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제 공직을 마감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적당히 시간만 보 내다가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성격에 용납되지 않았 다. 정왕3동에 발령을 받고 순찰을 다니다가 옥구천 경사면에 아카 시아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라서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개나리나 무가 뻗어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아카시아나무와 개나리나무가 울창하여 조성해 놓은 산책로 의 시야가 트이지 않아 무섭다며 여성들이 이용을 기피한다는 소리 가 들렸다. 그래서 불편을 주는 개나리나무를 잘라내기 시작하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개나리나무를 확 잘라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개나리나무를 확 잘라버리기로 했고 담당부서인 하수관리 과에 요구했다.

개나리나무를 베어내려고 했을 때 어떤 여성이 전화해서 자기는 개나리꽃을 좋아하는데 이삼 년 근무하다 갈 사람이 왜 개나리나무 를 베어내려고 하느냐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럼 아주 머니 시간에 맞출 테니까 한 번 만나서 같이 현장을 둘러보고 얘기 하자고 하여 약속을 잡았다.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30분 더 기 다리다가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 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15년에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옥구천변에 쉼터를 만들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네의자, 작 은 카페, 작은 도서관, 벤치, 돌탑을 만들었다. 경사면에서 돌을 주 워 돌탑을 쌓아 놓았는데 어느 날 나가 보니까 무너져 있었다. 그래서 헐어내고 다시 쌓아 놓으면 누군가가 또 헐어버렸다. 또 다시 쌓으면 다시 헐어 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범인을 잡을까 생각하기 도 했지만 돌탑이 불교를 상징한다는 생각으로 자꾸 헐어버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돌탑 쌓기를 포기하고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돌 의자를 만들었다.

옥구천 경사면에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순이 나 오면 바로 잘라버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제초제를 사서 잎사귀에 바르기도 하고 뿌리에 상처를 내고 바르기도 했다. 제초제를 바르면 모두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다시 싹이 나오는 나무가 많아 아카시아나무 뿌리를 캐내기도 했 다. 몇 개월 반복하다보니까 아카시아나무가 많이 죽었고 조금만 더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아카시아나무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이 되니까 경사면에서 무수히 많은 개나리 싹이 올라왔다. 개 나리나무는 줄기가 땅에 닿으면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경사면에 개 나리나무가 무성해졌다. 개나리나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두 뽑 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개나리나무를 뽑 아냈다. 무더운 여름에도 아침 일찍 출근하여 1시간 정도를 캐냈더 니 가을쯤 되니까 경사면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나 개나리나무 가 많이 줄어들었다.

2016년도에는 자전거도로와 개나리나무가 있는 사이에 잡초를 모두 뽑아내고 꽃밭을 만들기로 하고 쇠스랑과 호미로 땅을 파는 데 쉽지 않았다. 나무뿌리며 풀뿌리가 엉켜서 파기도 힘들고, 돌도 많이 나와 힘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거기 다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야채를 심으려고 하느냐, 꽃밭을 만들 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너무 많은 양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니까 서해중학교 한명숙 교장선생님이 서해 중학교에서 꽃을 심고 가꿔도 되느냐고 하셔서 그러라고 했다. 적 십자봉사단, 통장, 주민자치위원이 꽃밭을 일구고 꽃모종을 심었 다. 어떤 할머니들은 라일락 꽃 모종을 주며 심으라고 했다. 어떤 여성은 분꽃 모종을 가져와 심으라고 했다. 청소를 하고 잡초를 뽑 는 분들도 늘어났다. 전에는 무서워서 다니기가 겁이 났는데 꽃도 심어 훤하게 해 놓으니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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