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돼 /사진:픽사베이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돼 /사진:픽사베이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면사무소 재무계로 발령받았다. 재무 계에서 하는 일이 취득세, 면허세, 재산세, 농지세, 주민세 등 지방 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업무였다. 취득세 업무 중에 자진신고 업 무는 계장님이 하셨고, 자진신고 기간이 지난 건에 대하여는 내가 일을 처리했다.

어느 날 민원인이 찾아와서 항의를 했다. 자진 납부한 영수증과 함께 내가 발송한 고지서를 가지고 왔다. 자진신고하면 덜 내게 해 준다고 해서 자진신고를 했는데 실수로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 로 알고 고지서를 발송한 것이 자진 신고한 금액보다 더 적게 나간 것이다.

확인해 보니까 취득세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토지등 급에 의한 가격을 과표로 하여 취득세를 산정하는데 산출된 금액에 20%를 가산하여 취득세를 부과하지만 계장님이 자진신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매매 금액을 과표로 하는데 조금 깎아주는 것처럼 하면 서 20%의 가산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취득세를 부과했 던 것이다.

지금은 공시지가에 의해서 취득세가 부과되고 공시지가가 실제 매 매가격과 비슷하지만 당시에는 토지등급에 의한 가격에 의해 부과 되는데 토지 등급에 의한 가격이 실제 매매가격 보다 워낙 싸기 때 문에 20%의 가산세가 부과되더라도 취득세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진신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매매 가격을 과표로 하기 때문 에 실제 매매가격보다 줄여주고, 20%의 가산세를 부과하지 않더라 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비싸게 부과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진신고를 하면 손해를 보게 되어 있었다. 자진신고 제도는 자진신고자에게 이익을 주고자하는 제도임에도 자진신고를 하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입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민원인이 찾아오면 자진신고를 하면 손해를 보니까 자진신고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각종 세금부과징수 업무를 담당하면서 방문하는 민원인에게 세 금을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했더니 그해에 군청에 서 친절봉사상이 내려왔다.

농지세는 누진제도가 있어서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에게 많이 부 과되는 시스템이었다. 농지세 업무를 담당하면서 농지세가 많이 나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산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은 당시에는 주민등록번호 중에 하나를 틀리게 입력하면 두 사람으로 부과되어 누진율이 적용되지 않아 농지세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지 않는 영세민이 농사를 짓는 것처럼 쪼개는 사람도 있 었다. 나중에 영세민이 세금을 납부한 근거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금을 적게 내려고 영세민 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가능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다르게 하여 쪼개거나 영세민을 이용하여 쪼개기를 한 것을 바로 잡아 농지세를 부과했다.

어느 날인가 민원인이 찾아오더니 “야! 이 개새끼야 ! 네가 업무 를 보면서 농지세가 많이 나오잖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 민원인에게 집에 가셔서 실제로 농사를 짓는 내 역을 적어오면 그대로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집 에 가서 자신이 농사를 짓는 것을 적어 왔다. 그 사람에게 선생님 이 적어온 것은 맞는 것이니까 부과된 내역을 검토하자고 했다. 부 과내역에 있는 것이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한 후 그 사람이 적어온 내역과 대조해서 누락된 자료를 찾아 농지세를 산출했더니 내보냈 던 것보다 벼 27가마가 추가되었다. 그 사람이 먼저 나온 것으로 납부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나는 “점잖은 분이 왜 그러십니까? 우리가 볼펜으로 장부에 표시를 해놔서 우리도 감사를 받아야 합니 다.” 그랬더니 제발 먼저 나왔던 것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점잖 으신 양반이 왜 그러십니까? 어제는 와서 욕을 하시더니 오늘은 왜 그러시냐”며 벼 27가마가 추가된 고지서를 끊어 주었다.

일을 하다보면 공무원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지만 선량 한 사람도 있다.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는 몰라도, 선량한 사 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하면서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공무원 에게 재량권이 주어진다면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고의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법을 악용하는 사람 도 있지만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어 쩔 수 없는 입장에 처하다보니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재량권이 있다면 재량을 베풀어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듯싶다. 최소한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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