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소와 검은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오?“ 황희가 시골을 지나가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농부는 귓속말로 답했습니다. ”검은소도 잘하지만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유명한 황희 정승의 “누렁소와 검은소“일화인데요. 혹시 이 일화에 이상한 느낌 드시지 않나요? 검은소. 우리나라에서 검은소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 기억 속에 한우는 누런 황소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럼 조선시대에는 검은색의 소가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우를 황소로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럼 ‘한우’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리나라에는 황소뿐만 아니라 얼룩무늬의 칡소, 검은 소인 흑우 등 다양한 소가 살았습니다. 특히 흑우는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도 등장하고 조선시대 제주의 모습을 담은 ‘탐라순력도’에도 나타납니다. 정조실록을 보면, "제향에 쓰는 검은소는 더 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라고 기록돼 있고, 영조실록에는 제향에 올릴 검은소의 체구가 작다며, “살찌우지 못한 책임을 물어 제주목사를 처벌하라“는 기록 또한 나옵니다. 

게다가 검은소는 고기 맛이 뛰어나 조선시대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으로 공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이 돼서 한우 심사표준을 “한우의 모색은 황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라고 밝히는데요. 이런 심사표준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1938년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조선우의 표준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라고 발표합니다. 이때부터 누런색이 아닌 다른 색의 소들은 황우에 비교해서 관심이 사라지게 돼 사육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일제는 그 뿐 아니라 수많은 검은소들을 36년 동안 무려 150만여 마리나 반출합니다. 반출된 소들은 일본군의 군복과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도륙되었는데요. 반면 일본은 자신들의 검정소인 와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왔습니다. 이렇게 점점 사라지게 된 우리의 검은소.

1992년 제주에서 10여 마리의 검은소를 수소문해 찾아내 사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노력과 연구 끝에 20년 만에 1700여 마리로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죠. 우리정부는 뒤늦은 2013년 흑우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합니다. 이젠 전국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칡소와 검은소는 3900여 마리가 된다고 하네요.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혀 사라진 한우들.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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