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란 무엇인가?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인성에 관한 고민과 논의를 나누기에 앞서 인성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정의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

인성(人性)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인간 고유의 성질, 2.각 개인의 특성 이렇게 두 가지 의미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인성에 관해 논할 때 전근대에는 1번의 의미에 가깝게 ‘인간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품성의 기준’에 중점을 두었다면, 근대에 와서는 2번의 의미에 가깝게 ‘개인의 고유하고 변화하는 정체성’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그러나 개별성을 강조한다 해도 인간이란 존재로서의 보편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인성에 관해 논할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 이를테면 동물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기준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다른, 또는 달라야 한다고 여겨지는 점들이 바로 인성의 보편적 정의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달라야 하는 점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인성역전 방송 ‘인성개론’ 편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업을 듣는 중에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는 행위’와 ‘친구가 잠자는 시간에 카톡을 보내는 행위’ 두 가지를 예로 들었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는 행위는 가장 기초적인 신체적 욕구 충족에 해당하므로 동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려 기본적인 욕구마저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그렇게 할 것을 서로 기대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 음식을 먹으려면 해당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의 허용,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양해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서로 눈치를 살핌으로써 암묵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터놓고 대화로 협의할 수도 있으며, 혹은 권한을 가진 이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어쨌든 때와 장소, 즉 사회적 규범 여부를 가리지 않고 본능적 욕구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은 인간적인 행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뒤집어 보면 인간적 행위, 즉 사회적 규범을 알고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수업 시간에 졸음이 올 때 참아보지만 어쩔 수 없이 졸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선택이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현상이므로, 수업시간에 자면 안 된다는 규범에 비춰보아서도 용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 버리는 행위는 본인 의지로 규범을 어긴 행동이므로, 그 결과(예를 들어 학점을 낮게 받는)에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앞의 사례가 ‘신체적 욕구’와 ‘사회적 관계’에 관한 문제라면, 깊은 밤중과 같이 상대가 바로 핸드폰을 확인하기 어려운 시간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즉답을 보내길 요구하는 행위는 ‘정서적 욕구’와 ‘개인적 관계’에 관련된 문제이다. 깊고 친밀한 관계에서 사람은 보통의 관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정도의 관심과 배려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요구가 지나치고 일방적이 되면 관계를 해치게 된다.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관계가 깨질까 더 염려하는 쪽이 그 스트레스를 더 감수할 수밖에 없고, 결국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서적으로 착취하는, 즉 갑을 관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연인이나 친구 관계처럼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도 주도권 다툼이 있고, 갑을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단지 관심이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요구하는 행위가 실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괴로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본적 인성에 속하는 상대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앞의 두 사례에서 인성의 조건으로 신체적 욕구 조절과 타인에 대한 공감/배려를 들었는데, 이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뇌 구조와 발달과정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종을 번식하려 하며 위험에 대항하여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은 아주 원시적인 동물부터 인간까지 모든 동물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이다. 인간이라도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는 이런 ‘본능’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

이보다 높은 발달단계로 개, 코끼리, 원숭이, 돌고래 등 몇몇 고등동물과 인간에게는 다른 개체의 감정을 읽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기도 생후 몇 개월이 되면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상대의 표정과 어투로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이 감정 영역은 특히 청소년기에 폭발적으로 발달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또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본능’과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 즉 ‘이성’은 모든 동물 중 인간에게밖에 없다. 이것은 특별히 발달한 뇌 구조 덕분에 가능해진 능력이다.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인 ‘전두엽’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한다. 다른 고등동물에게도 전두엽이 있기는 하나 그 부피가 현저히 작다. 이 전두엽은 인간의 신체부위 중에서도 발달이 늦은 편인데, 완성되는 시기는 20대 후반에서 30세까지라고 한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성’은 바로 이 전두엽의 기능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차별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또한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인 것도 사실이며, 신체적 욕구(본능), 정서적 욕구(감정)도 충분히 만족되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어쩌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이 본능과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달한 능력이 이성일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기능으로서 인간의 속성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깊이 이해하고 훈련하는 과정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인성교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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