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속 옹달샘 가에 가면 물을 떠먹는 쪽박이 있습니다. 그 쪽박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평범한 그릇입니다. 만약 그 쪽박이 아름답거나 멋이 있다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쪽박은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주지 못하는 그릇이기에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산 속 옹달샘 가에 가면 물을 떠먹는 쪽박이 있습니다. 그 쪽박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평범한 그릇입니다. 만약 그 쪽박이 아름답거나 멋이 있다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쪽박은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주지 못하는 그릇이기에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쪽박은 목마른 사람이 옹달샘을 찾았을 때에 생수를 떠먹을 수 있는 귀한 그릇이 됩니다. 그 쪽박의 겉모습은 별 것 아니지만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해결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들은 산 속 옹달샘 가에 있는 쪽박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있는 5명이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누구입니까? 다말, 라합, 룻, 밧세바,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다말은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여인이고, 라합은 기생출신으로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구원받은 여인이고, 룻은 모압의 여인으로 시어머니를 좇아 베들레헴으로 와서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증조모가 된 여인입니다.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로 비록 남편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다윗의 뒤를 잇는 솔로몬을 태어나게 했고, 마리아도 무명의 여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축복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들의 공통점은 무명의 여인들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축복의 통로가 된 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자들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셨을까요? 당시 로마나 이스라엘에는 좋은 가문에서 자란 훌륭한 여인들이 많았는데도 이방 땅처럼 여겨진 변방의 갈릴리 지방에 속한 나사렛 동네의 평범하고 소박한 마리아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조건이나 모든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을 잉태할 만한 어떤 것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름 없는 나사렛 동네의 한 여인에 불과했고 요셉이라는 목수 직업을 가진 남자와 약혼을 한 평번한 여인이었지만 마리아는 주님이 오시는 길목에서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은혜로 귀히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원래 마리아라는 이름은 비통, 고난, 슬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이고,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사렛이라는 유대에서도 후미진 동네입니다. 이 민족, 저 민족이 쳐들어올 때 길목과 같아서 군인들에 의해 짓밟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던 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비천하고 하찮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은혜 베푸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마리아를 찾아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실 일이 있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 일을 마리아라는 처녀를 통해서 일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훌륭한 신앙을 통해서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되는 기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산 속 옹달샘 가에 가면 물을 떠먹는 쪽박이 있습니다. 그 쪽박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평범한 그릇입니다. 만약 그 쪽박이 아름답거나 멋이 있다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쪽박은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주지 못하는 그릇이기에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 줄탁동시 >

줄탁동시란 말은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21일 동안 어미 닭이 달걀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가 된 새끼가 여리디 여린 부리로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이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무화가 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고사성어입니다. 아무리 어미닭이 준비했다 할지라도 안에서 병아리가 쪼지 안하면 어미 닭은 밖에서 쪼아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준비되어 있지 아니한 병아리의 껍질을 쪼아서 태어나게 되면 그 병아리는 병약하여 얼마 있지 않아 죽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마리아는 어떤 반응을 하였습니까?

첫째, 마리아는 죽음을 각오한 헌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 앞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순종은 죽음을 각오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부정하게 아이를 잉태하면 파혼을 당하고 아버지의 족보에서도 빠지게 되고 돌로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것이 주님의 일이시면, 그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시하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죽음과 버림받을 각오한 헌신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성자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과 큰 축복을 받았고 인류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일익을 감당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함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아낌없이 헌신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한 결과로 큰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30,42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또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고 말합니다. 여자 중에 제일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브리엘 천사가 일러준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하는 말씀처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함께하시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염려 근심이 사라집니다.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히 순종하였습니다. 38절에 “주는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역사에 쓰임 받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마리아는 개인적이 계획이나 꿈보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 계획을 앞세웠습니다. 자신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 순종으로 시골 처녀 마리아는 온 인류가 흠모하는 성모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순종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계집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자아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의 정혼녀요 부모의 딸이기 이전에 먼저 주님 앞에서 주의 계집종임을 인식했습니다. 마리아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인식할 때 영적 질서를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의 분명한 정체성과 인식을 갖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성이 분명한 종의 자세를 갖기 바랍니다.

셋째, 마리아는 말씀을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자기가 손해보고,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친히 아기를 잉태하게 하신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산 속 옹달샘 가에 가면 물을 떠먹는 쪽박이 있습니다. 그 쪽박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평범한 그릇입니다. 만약 그 쪽박이 아름답거나 멋이 있다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쪽박은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주지 못하는 그릇이기에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믿는 자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믿는 자를 통해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마리아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은 받을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마라의 쓴물 앞에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앞에서도, 밤이 맞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도,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은혜와 은총은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은총이라 말은 더 강한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은총이란 높은 사람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마리아처럼 죽음을 각오한 헌신, 순종,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더욱더 귀히 쓰임 받는 복된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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