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다워집니다. 옛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다워집니다. 옛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뜻을 풀이하는 중년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교육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교육은 가장 의미있고 중요하고 가치있는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분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합니다.

<계몽주의 교육자 룻소>

농부가 되기를 원하던 한 소년이 어느날 농기구와 방앗간 발동기를 고치는 엔지니어를 보고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했고, 변호사를 보고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치료하는 의사를 보고는 의사가 되고 싶었으며,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보고는 목사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이에 하나님이 음성이 들리기를 “너는 모두가 될 수는 없느니라. 그러니 너는 그런 사람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거라. 선생님이 되거라. 그래서 네가 가르친 제자가 농부, 엔지니어, 법률가, 의사, 목사가 되게 하거라. 그러면 너는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년은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계명주의 교육자 룻소입니다. 이처럼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이 있으면 훌륭한 많은 사람들이 배출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교육이 일어나는 곳이 몇 군데가 있는데 첫째는 가정입니다.

부모님은 위대한 선생님이십니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요 최고의 학교입니다. 위대한 선생님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은 기본적인 교육기관이고 아기가 처음 만나는 학교이며 인생과 교육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말씀과 신앙으로 양육하라고 부모에게 맡기셨지만 산업화, 전문화되면서 가정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어 부모님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가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제자로 삼아 주님께서 분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가정은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곳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축복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 스스로에게 위대한 존재,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녀가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교육의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중심 교육입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교육자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교과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지혜를 가르치셨습니다.

두 번째는 여러 가지 삶과 종교적인 예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예식들과 종교적인 축제, 절기 즉, 맥추절, 유월절, 칠칠절, 부림절 등을 통해 생생한 인생교육, 역사교육을 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가정을 중심으로 부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교육을 가정에서부터 행하게 됩니다.

▲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다워집니다. 옛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학교교육입니다.

학교교육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인격을 배우고 세상의 학문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분이 바로 교사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의 교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존경해야 할 교사가 쉽게 학생들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멸시를 당하는 현실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이 교사를 존경하며 그분의 인격을 닮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20-30년 전에는 아무리 잘못된 교사의 행동일지라도 스승이기에 복종하고 거기에 따랐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보다는 지식이 덜할지라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도덕, 윤리 때문에 그래도 지금보다는 인정이 있고 이웃 간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의 이익 때문에, 자기 자녀만을 앞장세우다 보니 교사에 대하여 존경심도 경외심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이 시대 우리나라 학교 교육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위상과 사기와 권위가 중요합니다. 열악한 교육환경 가운데서 수많은 잡무와 비판 등으로 시달리는 이 시대 선생님에게 국민적 존경과 애정을 보내야 합니다. 교권이 회복되도록 사회와 부모가 노력해야 합니다.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래도 선생님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을 축복해야 합니다. 축복받은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은 우리의 자녀가 복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교회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막중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 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훌륭한 인물들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훌륭한 교사입니다. 좋은 교사에 의해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 위대한 인재가 되기도 하고, 교사의 무성의에 의해서 가능성이 있던 아이들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분재와 같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라고자 하는 나무를 주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가도록 억제하고 이끌어 가면 아름다운 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자라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면 자기의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다워집니다. 옛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스승 보톨도 지오바니>

보톨도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었을 때, 보톨도가 자신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온 미켈란젤로에게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 그에게 “네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술집과 거대한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조각상들을 보여주며 “어떠한 조각상을 위해서 네 기술과 재능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물음에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우리 자녀는 분재와 같습니다. 마음대로 자라고 싶은 나무에게 주인이 의도를 가지고 방향을 정해주면 그 방향대로 자라게 되는 것처럼, 죄악으로 살아가게 될 우리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자라게 됩니다.

많이 배웠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다 영적인 깨달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빌립을 통해 성경을 깨달음을 얻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에디오피아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이 나라는 솔로몬 왕에게 지혜를 들으러 왔던 시바 여왕의 나라입니다. 이때는 구약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시대 즉 지난 2천년동안 에디오피아가 기독교국가로 지속되게 된 것은 바로 이 내시가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자기 고국에 돌아가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 동물은 본능적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다워집니다. 옛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서 어디가 길인지 모르고 죽음의 길로 가는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며 군림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에게 발을 내밀라 하고 그 발을 씻기시는 겸손하신 선생님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영적으로 양육하는 교사들과 교역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갑절이나 존경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통해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와 도덕을,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통해서 세상의 학문과 선생님의 인격을, 그리고 교회에서는 교사와 교역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비밀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교역자들과 교회학교 선생님, 즉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더더욱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글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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