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충선왕은 ‘이지리부카’라는 몽골 이름을 가진, 즉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다. 충선왕은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고한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의 내치보다 나라 밖의 몽골의 동향에만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충선왕의 개혁은 결국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제왕들의 성공학-국민대 박종기교수>

고려 충선왕은 ‘이지리부카’라는 몽골 이름을 가진, 즉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다. 충선왕은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고한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의 내치보다 나라 밖의 몽골의 동향에만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충선왕의 개혁은 결국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유대 나라의 13대 왕으로서 25세에 왕위에 올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해 행하여 여러 우상들을 제거하며 종교개혁을 일으킨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왕하18:7) 또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백성들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았고 인정받았던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 왕이 죽고 난 후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달리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우상들을 다시 만들고 이방의 신당들을 다시 쌓고, 백성들로 하나님보다 우상들을 더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에 있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 말씀대로 잘 이끌고,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왕이 오히려 백성들을 범죄하게 만들고, 악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인생 말년에 므낫세 왕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요시야가 여러 가지 개혁을 하고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왕하23:26) 또 열왕기하 24장 2,3절에서도 구체적으로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를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므낫세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고 70년 동안 종살이하며 비참한 삶을 살았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400년 동안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렇게 된 배후에는 히스기야가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잘못된 자식교육 때문에 가문에 수치를 가져왔고 나라를 망하게 했고 유대 나라 역사상 가장 큰 불행을 겪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왕으로서는 훌륭했던 히스기야가 자녀교육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히스기야 왕의 삶을 통해서,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가정 일을 소중히 여김

첫째로 히스기야가 나라 일은 중요시 한 반면, 가정 일은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유다 나라의 왕위에 올랐을 때, 주변 정세에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쪽에는 블레셋이 있었고, 북쪽으로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가 끊임없이 유대 왕국을 압박하고 침입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끝없이 문제가 히스기야에게 이어졌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스기야는 밤잠 설치며 나라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라 일과는 달리, 가정 일은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히스기야가 한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일이 나라일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일반 평민이 아니라 왕이었고, 그의 아들이 장차 유다 왕국을 이끌 왕위에 오를 것이기 때문에 가정 일을 소홀히 한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나라 일은 잘했지만, 가정 일에 소홀히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밖의 일은 잘하면서 가정 일에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직장 일이나 사업이나 학업도 열심히 하지만, 가정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집사와 장로와 목사로 맡겨진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아빠와 엄마와 부모로서 가정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 고려 충선왕은 ‘이지리부카’라는 몽골 이름을 가진, 즉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다. 충선왕은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고한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의 내치보다 나라 밖의 몽골의 동향에만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충선왕의 개혁은 결국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2)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

둘째로 히스기야가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39세의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결국 그의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 후, 그의 나이 42세 때에 므낫세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그것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얻은 아들 므낫세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되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징계하시고 고된 훈련도 시키십니다.

콩나물과 콩 나무의 씨앗은 똑같이 콩이지만 성장과정에서 나무가 되기도 하고 나물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콩이지만 땅에서 키우면 콩나무가 되고 시루에서 키우면 콩나물이 됩니다. 땅에 심어진 콩은 자신이 썩어 밑거름이 되어 싹을 틔운 후 차가운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맞으면서 강하게 성장하고, 그 결과 새로운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먹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콩이 됩니다. 그러나 시루에서 키우면 과잉보호를 받아 적당한 온도와 영양 공급 속에서 빨리 자라나 나물이 되어 사람들의 먹거리는 될 수 있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콩나물이 될 뿐입니다.

므낫세는 시루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콩나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을 과잉보호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에게 채찍과 꾸지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지만, 때때로 매와 회초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매는 사랑의 매가 되어야 합니다.(잠29:15,엡6:4) 또 우리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잠22:6)

1986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노벨상 수상자 약300명 중에 유대인 출신이 93명, 약 1/3을 차지합니다. 미국 전체 인국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밖에 안 되는데도 400명의 재벌 중 23%가, 변호사 중에서 20%가, 대학 교수 중에 25-30%가 유대인입니다. 세계의 경제도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렇게 복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주기 보다는 부모님의 믿음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3)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함

셋째로 히스기야가 자녀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 받았다면 전보다도 더욱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그 마음이 오히려 교만해졌습니니다.(왕하32:24-25) 그 아들인 므낫세가 아버지의 그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나이어린 므낫세는 아버지의 교만한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나쁜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결과 유대 나라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 받고 나서 히스기야가 한 일이라고는 자녀에게 나쁜 모습을 보여준 것뿐입니다.

어느 분이 “자녀교육이란 결국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그 부모의 삶을 닮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의 효과적인 방법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따라하게 되어 있고 우리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 고려 충선왕은 ‘이지리부카’라는 몽골 이름을 가진, 즉 한국 역사상 외국인의 피가 섞인 최초의 임금이었다. 충선왕은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몽골에 가서, 많은 장점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면모를 새롭게 하려고한 한국 역사상 ‘세계화’를 추구한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의 내치보다 나라 밖의 몽골의 동향에만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충선왕의 개혁은 결국 내치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탈무드-외투 산 이야기>

어떤 사람이 헌옷가게에서 외투 하나를 샀는데, 외투 호주머니에 보석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보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랍비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랍비는 “당신은 옷을 산 것이지 보석을 산 것이 아니지 않느냐 보석을 돌려주러 갈 때 네 자녀를 데리고 가라.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본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자녀들이 닮아가고 싶은 모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자녀 교육실패를 통해서 자녀 교육에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를 피우게 하기 위해서도 손이 많이 필요하듯 우리 자녀들의 인생의 꽃도 저절로 피울 수 없습니다. 손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정 밖의 일 뿐 아니라 가정의 일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아야지’하는 삶의 모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처럼 자녀 교육에 실패하지 마시고 자녀들을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아니라 아닌 삶의로 모범을 보이는 훌륭한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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