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크게 두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없는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크게 두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없는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러므로 만물 속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권세와 권능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골고다 십자가 위에 그 아들을 못 박히게 하시면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그 은혜는, 골고다 작은 언덕 위의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의 장면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 인간의 사랑을 모두 합하여도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쓸 수 없다고 찬송가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한 사람도 구원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버림받고, 쓸모없고, 파괴되고, 온갖 불의와 죄악으로 종노릇하고 더러워진 우리 인간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쓸모없는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완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린 인간을 처음 모습, 즉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의 보혈의 은혜입니다. 주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씻으시고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영생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 “그가 저주를 받은바 되사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건지셨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를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의 죽음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는 해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고 그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총인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크게 두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없는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 생명의 종교입니다.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어린 생명은 부모로부터 태어납니다. 부모의 고통과 아픔을 통하여 한 생명이 태어나듯이 우리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 아들의 아픔과 하나님 아들의 저주와 죽음, 그 부끄러움과 멸망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중요한 것은 구원, 속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에 있는 대로 울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고,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천국 갈 수 없고 구원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것으로는 구원의 길이 전혀 없지만,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교회는 항상 십자가로 무장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인이 많고, 능력이 많이 있을지라도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는 교회는 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것보다 십자가는 앞서고 중요한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선교,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도,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봉사, 십자가 없는 충성, 십자가 없는 설교, 십자가 없는 부흥,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2천 년 동안 이 모든 세력을 딛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십자가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믿고 의지하면 늘 불안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배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도 사람을 가까이 하면 늘 불안합니다.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불안합니다. 어떤 사람도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늘 불안함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중요할 때는 자기가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일 당하면 주님은 본능적으로 앞에 와서 가로막으십니다. 나 죽을 대신 주님이 죽으시고 우리는 지켜주십니다. 십자가를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 성도는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아무도 해칠 수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은 개인이나 민족은 한 사람도 부끄러움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큰 능력, 어떤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소유하고 사랑하고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자랑하는 사람은 항상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크게 두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없는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흥은 있을 수가 없고 십자가 없는 찬양과 기도, 봉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항상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늘 또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을 하나님이 조명해 주시고, 십자가 있는 곳을 기뻐하십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천군ㆍ천사가 따라오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있는 모든 곳에 자유와 평화가 있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대로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십자가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승리하고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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