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박약아인 ‘아담’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하버드대 교수직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와 인기 등 모든 특권을 버리고 정박 수용시설로 들어가 정박아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 예화 / 헨리 나우웬 >

천재로 불리며 오르막 길만 걷던 한 소년은 주위의 기대대로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박약아인 ‘아담’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하버드대 교수직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와 인기 등 모든 특권을 버리고 정박 수용시설로 들어가 정박아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의 물음에 오랫동안 침묵했던 21세기 최고의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 자신이 오르막길을 갈 때는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내리막길을 갈 때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Paradox','역설의 원리’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약할 때 강하게 된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자가 먼저 된다. 죽으면 산다. 드리면 받게 된다. 등 많은 역설의 원리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역설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갔는데 이들의 기도하는 모습에 차이가 있습니다.

11절과 12절에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기도 속에는 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드렸는지 알 수 있는 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인칭 단수 ‘나’라는 단어입니다. 원어에는 4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자기 자랑만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는 것과 그는 십일조가 드려진 소출물에도 자기의 주어딘 소득에서 다시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세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그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13절에는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세리는 죄 때문에 부끄러워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

진 한 쪽 구석에 섰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당시 가슴을 치는 것은 깊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정신박약아인 ‘아담’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하버드대 교수직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와 인기 등 모든 특권을 버리고 정박 수용시설로 들어가 정박아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까?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세상의 기준과 달리,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를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그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누구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9절)’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멸시하고 정죄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고,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를 인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교만 때문입니다.(14절) 그래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Paradox’‘역설의 원리’입니다. 요즘은 높아지려고 발버둥을 쳐도 높아지기 힘든 세상인데, 주님은 오히려 세상의 원리와 반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사울이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올라 모든 것이 잘 풀리다보니 교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드리고,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진멸하지 않고 기름지고 좋은 것은 남겨서 취했습니다. 그런 사울 왕에게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삼상15:17)” 그런데 왕위에 오르고 나서 사울이 교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16세에 왕이 되어 겸손히 하나님의 사람 스가랴의 말을 잘 듣어 형통한 삶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고유권한까지 간섭했습니다. 결국 그는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이 생겨 궁궐에서 쫓겨나 별채에서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비결이요, 복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겸손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낮아짐의 모습을 보여주신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예수님의 그 모습을 기뻐하셔서 예수님께서 물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주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 정신박약아인 ‘아담’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하버드대 교수직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와 인기 등 모든 특권을 버리고 정박 수용시설로 들어가 정박아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낮아지실 때에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낮아져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며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처럼 나를 희생하고 낮아지면 주님께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높여 주십니다.

우리는 ‘복’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바락 오마바인데 이 ‘바라크’라는 단어에는 ‘복을 받다’라는 의미와 함께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은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복을 끌어오는 자석과 같습니다.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햇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쬐는 것처럼 영적인 은혜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복도 위에서 아래로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출 줄 알고,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재물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생명, 즉 풍성한 생명을 허락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애를 쓰십니까?

< 예화 / 소설을 쓰는 여자 집사님 >

어느 교회에 소설을 쓰는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자기의 인기를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쓴 소설은 꽤 인기가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 수입으로 부동산에 투자해서 자기의 재산을 증식했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기에게 남은 삶이 3개월 밖에 되지 않는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지난 날이 헛되게 느껴지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아도, 애써 장만해 놓았던 가구들을 보아도, 심혈을 기울여 써온 원고뭉치를 쳐다보아도 그저 눈물만 솟구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뛰어가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남은 3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삶이 저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겠습니까? 이 한 가지만큼은 꼭 가르쳐 주세요”

애타게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하라!”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기로 인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졌을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또 자신의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나머지는 가족들을 위한 유산으로 분배했고 유언장도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틈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 정신박약아인 ‘아담’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져서 하버드대 교수직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지위와 인기 등 모든 특권을 버리고 정박 수용시설로 들어가 정박아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생명이 지속되어서 다시 다른 병원을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간암이라는 것은 순전히 오진이었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집사님 얼마나 억울하십니까?”라고 했더니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제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값진 3개월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시한부 인생의 심정으로 살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다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그 나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풀의 꽃처럼 잠시 잠깐 뒤면 지나가 버릴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너무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를 낮추셔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깊게 만들어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로 만족을 삼지 말고, 영원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순절을 지내는 중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겸손의 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겸손히 나를 낮추고 섬기면 주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고 더욱 귀히 쓰임 받게 하실 것입니다.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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