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탄생한 날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한 사람을 기억했는데 44년 전 44세를 일기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던 테오도르 허츨입니다

1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탄생한 날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한 사람을 기억했는데 44년 전 44세를 일기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던 테오도르 허츨입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이 아닌 현대 유럽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 생각한 허츨은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도 믿지 않고 유대인단체의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츨이 존경하는 유대인이자 프랑스군의 장교인 드레퓌스가 반역자로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드레퓌스는 허츨과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이 일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허츨은 드레퓌스가 사형 당하는 현장에서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허츨은 드레퓌스가 처형당하는 이유가 반역자라는 사실보다 유대인이기 때문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 후에 허츨은 자신이 유대인인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유대인이 살 길은 국가로 독립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습니다. 그의 꿈은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고 유대인 친구들조차도 정신 나갔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소망이 허츨을 ‘독립’에 미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계속해서 기다리며 외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불가능해보이기만 했던 희망은 허츨이 세상을 떠난 지 44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소망이었고,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밤낮 기도하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결예식을 받기 위해서 성전에 온 어린 예수를 품에 안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므온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그 말은 “이제는 이 민족의 앞날에 대해서 더 이상 염려 안 해도 되겠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는 말입니다. 또 36절 이하에 보면 안나라는 분이 나옵니다. 안나는 남편과 단 7년을 함께 살고, 사별하여 84세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섬기던 분이셨습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어떻게 오랜 세월 동안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약속 때문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임이라” 라는 이 약속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약속입니다. 장차 이 땅에 메시야가 탄생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은 기다리는 행복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때때로 주어지는 고난을 기쁘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당시의 고난을 잘 이겨냈고 그 고난 속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지배를 받고 살았지만 오히려 로마인을 우습게 바라볼 수 있는 자존심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모습을 보면 장차 주어질 천국에 대한 약속 때문에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약속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는 모습도 보면 당당하고 의연합니다. 그것도 그에게 주어진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이 주어진 사람에게는 이런 용기가 주어집니다. 이 용기가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마침내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것은 약속이 없는 사람입니다.약속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유대인의 자존심을 지키며 메시야가 오실 날이 오늘인가 내일인가 기다리며 기도하고 고대했습니다. 그래서 안나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가 탄생하리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기다리던 메시야인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때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의 합창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고,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왔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조용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징조도, 꿈도 없었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요란하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요란한 징조가 있었어도 그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없는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약속을 바라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첫째, 시몬과 안나는 예수님을 ‘믿음과 소망 중’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이 바라본 당시 시대 모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100살 혹은 적어도 90살은 넘겼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이가 들면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포기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소망보다는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더라도 지도층인 사두개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로마 권력층에 붙어 평민들을 박해했고, 바리새파는 자신들만 경건하다고 자랑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아예 상종도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간 소망의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망이란 불행이라는 터널을 지날 때 터널 끝에 비추이는 빛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울 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품어왔던 소망이 깨져 절망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안나와 시몬은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늙었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 소망이 없다 할지라도 여태껏 약속을 지키신 신실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들은 소망 중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담대하게 외치며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대림절은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소망을 다시 찾게 해 주는 시간입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가 돌이켜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얼룩진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둘째, 안나와 시몬은 언제든지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본 사람은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의 기다림을 나타내는 동사는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 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장 25절에 보면 오실 메시아를 위해 시몬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했고, 언제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았습니다. 2장 37절에 보면, 안나도 금식하며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섬기는 일을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왔다고 증거 합니다.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그 때, 간절한 바램으로 하나님을 기다렸고, 결국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탄생한 날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한 사람을 기억했는데 44년 전 44세를 일기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던 테오도르 허츨입니다

독일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바리아라는 성에 루드비히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작이 사냥을 나갔다가 숲 속에 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오랜만에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예배당 벽에 무슨 글씨가 쓰였습니다. 삼일인지, 세 달인지, 삼년인지 아무튼 그 안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공작은 나름대로 삼일 안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 해석했고 삼일 동안 아내와 부하들에게 잘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삼일 뒤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다시 세 달이라고 해석하고, 석 달 동안 가족과 백성들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공작은 다시 3년이라고 확신하면서 3년 동안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독일 왕실에서 루드비히 공작을 독일의 황제로 모시기 위해서 사절단이 왔습니다. 삼년을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공작의 소문이 전 독일에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공작이 독일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행 때문이었고, 공작의 선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셋째로 시므온과 안나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감사와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8절을 보면 안나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시므온에게 이 세상은 절망과 상처, 위로받지 못함과 괴로움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이 소망을 잃지 않고 메시야를 기다렸던 어느 날, 이제야 주의 구원을 보았노라고, 어둠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을 보았노라고 외치는 감격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또 나이 많아 주님을 만난 안나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성탄의 계절,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내가 찾은 복음의 소식을 증거 하는 것이 진실로 구원을 맛 본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본질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감사와 증인으로서 사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낙담과 탄식의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내 인생을 찾아와 구원하고 인도하실 그 주님의 이름으로 딛고 일어나십시오. 절망과 낙담의 삶을 중단 하십시오. 내게도 빛과 소망이 되어주실 주님의 손을 붙잡고, 여러분을 둘러싼 그 어둠을 뚫고 나가십시오. 바로 그것이 주를 증거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고난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설교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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