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치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는 감정입니다. 수치는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느낄 때 혹은 자신의 결점이 타인에게 노출될 때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최초의 수치심의 기록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벌거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한 내용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치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는 감정입니다. 수치는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느낄 때 혹은 자신의 결점이 타인에게 노출될 때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최초의 수치심의 기록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벌거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한 내용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보통 3세 전후해서 수치심이 생기게 되는데,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태도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때라고 합니다. 이 수치심의 유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죄의 결과로 생기는 수치심입니다. 자신이 죄를 지으면 수치심이 생깁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타인의 범죄의 대상 또는 희생물이 된 결과로 생기게 된 수치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치심의 노예에서 벗어나, 나의 수치가 오히려 자랑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남편을 다섯이나 거처가면서 평생 수치심으로 정상적 삶을 살지 못하다가 예수님 만나 그의 수치스러운 것을 자랑하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한 여인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치가 자랑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어떤 수치스런 과거가 있다하여도 자신을 수치스런 존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9절을 보면 이 여인은 물을 달라하는 예수님께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왜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반문합니다. 당시 문화는 여인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여인은 말하지 않고 있지만 자신은 남편을 다섯이나 거친 수치스런 사람입니다. 자신을 수치스런 존재,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수가성을 찾아갔고 우물에 앉아서 이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을 요구합니다. 왜 물을 요구합니까? 이 여인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줄 수 있는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리 수치스런 존재일지라도 우리를 찾아와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딸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2. 우리는 수치스런 경험이 있다하여도 예수님을 만나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8-29절을 보면 여자는 자기를 수치스럽게 보고 있는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자랑했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타인을 통해 알게 됩니다. 자아상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타인이 내게 주는 평가와 피드백으로 이루어집니다. 수치심이 있을 때 수치심을 은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수치심은 숨기려 한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고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숨기려 하면 더욱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고, 밝고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수치를 자랑으로 살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메시아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유대인(9절), 당신(12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호칭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15절에는 주, 19절에는 선지자, 29절에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이 영혼 깊숙이에서 우러나오고 우리 입술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 나의 왕, 나의 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면 우리 인생과 보이는 세계가 달라집니다.

▲ 수치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갖는 감정입니다. 수치는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느낄 때 혹은 자신의 결점이 타인에게 노출될 때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최초의 수치심의 기록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벌거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한 내용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우리는 수치의 경험을 디딤돌로 하여 예수님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8절을 보면 여자가 기피하던 동네 사람들에게로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물동이를 버려두었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동네로 담대히 들어가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합니다. 누가 말을 걸까 두려웠던 사람이 29절을 보면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고, 수치심으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부끄러워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없는 여인이었지만 그 여인은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우리의 수치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수치의 경험을 수치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치스런 환경을 만나 자신감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수치스런 일을 만들어 평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수치심은 도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피하면 도피처를 찾게 되고 그 도피처가 중독의 온상이 되는 것입니다. 중독이 되면 잠깐 수치를 잊을 수 있으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듭니다. 남편 다섯이나 두어 그 수치심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없었던 여인은 그 수치심 때문에 예수님 만나 수치심에서 해방되어 온 동네에 돌아다니며 메시아를 전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을 때 우리의 수치도 함께 지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히12:2). 우리의 수치를 십자가상에서 다 당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여러분의 수치가 자랑으로, 그리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의 삶이 복되고 아름다운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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