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에서 한국 트로트를 알리는 애국가수 기선
[인터뷰] 일본에서 한국 트로트를 알리는 애국가수 기선
  • 추현혜
  • 승인 2019.05.23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16년 '위대한 한국인 100인' 해외 부분 한류 문화 대상 수상!
- 한복을 입고 트로트로 한국을 알리며 교포단합을 유도하는 민간 문화사절 주인공!

한국에선 미스트롯이 유행이었다면, 지금 일본열도에선 한복을 입고 ‘희망의 아리랑’을 부르며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는 엔카가수 기선이 있다. 최근 대구 컬러풀 페스티벌에서 일본 삼바팀을 이끌고 방문하였으며서울·대구·부산을 중심으로 민간 문화외교 활동하고 있다. 일본 속 작은 한국의 민단활동의 홍대보사이면서 교포 2세들에게 한국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양국의 친선교류에 앞장서고 있는 엔카가수 기선(51. 본명김기선)씨를 만나보았다.

 

                                     출처: 가수 기선
사진: 가수 '김기선'이 공연중이다. 

Q. 유학생 시절 스피치 콘테스트 대상을 받고 책도 많이 읽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는가요?
가수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한국어를 노래로 가르치다 학생분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한복만 입고 활동하는 가수로 유명하신데 왜 한복을 선택하게 되었는가요?
 일본의 엔카 가수들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많이 입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트로트가수들은 드레스를 많이 입습니다. 저는 한국의 아름다운 한복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한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희망의 아리랑’은 어떠한 곡인가요?
희망의 아리랑은 재일교포 분들이 고국이 그리울때 아리랑을 부르며 향수를 달래는걸 보고 ‘내 나이가 어때서’ 작곡가 정기수 님께 말씀드려 힘들고 어려울 때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주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Q. 일본에서 일본 가수들과 경쟁하며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일본의 3대 대형홀로 통하는 와사쿠사 공예단, 메이지잡의 무대에 설 수가 있었는가요?
첫째로 한류 붐이었던 시기와 잘 맞아떨어졌고 둘째로는 재일교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그리고 학생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어 여러 무대를 설 때마다 같은 무대에 섰던 일본 가수들이 오히려 저를 응원해줬습니다. 그것은 한복의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처: 가수 기선
사진:공연중인 가수 김기선

Q. 2014년 일한 축제 때 재학생들에게 태극기를 들고 무대에 서도록 하였다는데 반한 세력 등 기획자들은 보통 다음 캐스팅을 위해서라도 피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가요?
저희 학생들은 일본인 70프로 교포 30프로 그때 당시의 회장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일본인으로서 한국인을 사랑하는 한국 노래사랑모임의 회장을 겸하고 있었으며 이런 축제 자체가 일본과 한국의 문화교류이므로 학생회장께서 학생들을 설득시켜 태극기를 드는 건 예정에 없던 퍼포먼스였지만 일본인 학생들이 이해해줬습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에선 가능한 일입니다.

Q. 최근 미스 트롯이 유행을 하며 트롯계의 희망이 보이는 듯합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트로트를 알리는 전도사로써 한국의 트로트계를 어떻게 보는 가요?
트로트계가 침체되어있던 트롯계가 미스트롯으로 인해 다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건 한국트롯계의 기쁜 일이고 한국공중파 방송에서 트로트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노래를 하고자 하는 가수들은 많지만 무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Q. 소록도 100주년 때 봉사활동도 다녀오셨는데 느낌은 어떠하였는가요?
처음 소록도 100주년 봉사 공연의 섭외를 받았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답했습니다. 가기 전 노래연습을 할 때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가서 무슨 말을 하여야할까? 어떤 말로 이루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공연은 밤에 이뤄졌고 앞의 공연자들에게 사회자가 박수를 많이 쳐달라고 했지만 제가 나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수는 치지 마세요! 대신 소리를 질러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손뼉을 쳐도 소리를 낼 수 없는 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영수 여사가 소록도에 가서 소록도 주민이 준 음식을 받아 드시고 기쁘게 드셨다고 가기 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두 번째 곡의 무대를 내려갔는데 제가 그분들과 악수를 했습니다. 순간 가사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악수할 손이 없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섬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같이 살 수가 없고 격리되어서 한 달에 한 번 철조망 밖에서 아이를 만지지도 못하고 볼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슬픔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감사하게 느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Q. 교포 단합을 위한 문화사절단으로도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구체적 활동을 이야기해주십시오.
저는 재일민단 도시마 시부에서 노래강사를 하며 매달 정기적인 부인회의 단합대회와 사계절 연간 행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문화와 트로트 국악 등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Q. 향후 한국에서도 활동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습니다 또 정치가가 아닌 일반 일본인들 중에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문화교류를 통해 한일 양국의 친선 도모에 앞장서겠습니다.

애국자라고 방송으로 SNS를 통해 이야기 하는 목적성 있는 홍보를 본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애국가를 부르게 하고 한복을 입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리는 그녀가 진정 애국자가 아닌가? 양국의 친선교류에 앞장서겠다는 애국자 가수기선을 보며 민간외교의 밝은 미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