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거지?
나는 내가 조종하는 우주선의 선장이다.

W Mitchell/출처:W Mitchell 공식 웹사이트

미첼은 1943년 생으로 미국 동기부여 연설가와 사업가다. 그는 해병대를 제대했고, 작은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그의 이력으로 보면 삶이 평단해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미첼은 바이크 사고로 몸의 65퍼센트 이상 화상을 입어 포크도 사용할 수 없었다. 전화기의 다이얼도 돌릴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해병대 출신이던 미첼은, 자신은 결코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미첼은 말했다. "나는 내가 조종하는 우주선의 선장이다. 우주선이 올라가도 내가 올라가는 것이고 내려가도 내가 내려가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좌절로 볼 수도 있고 전환점으로 볼 수도 있다.“

여섯 달 뒤 미첼은 몸이 회복되고 다시 경비행기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콜로라도에 빅토리아풍의 집과 약간의 땅, 경비행기 한 대와 스탠드 바(Stand bar, 긴 스탠드 앞에 의자를 늘어놓고 바텐더가 여러 손님을 상대하는 술집)를 구입했다. 얼마 뒤에는 친구 두 명과 동업해서 나무를 이용하는 난로 회사를 차렸다. 미첼은 이 회사를 버몬트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로 키웠다. 그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바이크 사고 이후 비행기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출처:픽사베이

바이크 사고를 당한 지 4년 후, 미첼은 경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비행기에 탔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던 도중에 추락했다. 그는 이 사고로 목숨은 건졌지만 갈비뼈 열두 개가 부러졌고 하반신이 영구 마비됐다. 미첼은 생각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내가 어떤 나쁜 짓을 했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
 
미첼은 슬픔에 잠겨 있는 대신 가능한 한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는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고, 콜로라도 주의 크레스티드 뷰트 시장으로 뽑혔다. 그 후 미첼은 미국 하원의원 진출을 시도했다. 이때 미첼은 사고를 당한 자신의 이상한 외모를 이용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만들었다. "예쁘장한 얼굴 또 뽑아봐야 아무 소용없다!“

미첼의 얼굴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 얼굴과 신체 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급류 뗏목타기를 시작했고,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대학 행정학 학위도 받았다. 미첼은 사고를 당한 경비행기 조종도 다시 시작했고, 환경보호 운동과 대중 연설을 계속했다. 이런 긍정적인 삶의 자세 덕분에 미첼은 ‘투에이쇼’와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했으며 ‘뉴욕타임스’, ‘타임’, ‘퍼레이드’도 그의 이야기를 특집 기사로 다뤘다.(*) 

전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영화배우 마틴 쉰과 함께/출처:W Mitchell 공식 웹사이트

미첼은 두 번이나 큰 사고를 당했고 육체적 고통을 당해야 했다. 실제 얼굴은 사고의 후유증이 많이 보인다. 그의 손에는 손가락이 없다. 남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당했을 이상한 시선도 그에게는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런 모습을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미첼은 그것을 더 이용했다. 자신의 특이한 얼굴을 무기로 하원의원에 도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바이크는 탈 수 없지만 경비행기는 다시 조종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실패를 무기로 삼아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출처>
(*) 《W Mitchell》 위키피디아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2》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 류시화 역 | 푸른숲 (197-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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