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선욱 간호사'의 산재판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

지난 3월 6일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판정되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평소 고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중환자실의 업무와 교육이 고인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으로 작용하였고 이것에 과중한 업무가 더해져 고인의 정신적인 억제력이 저하되어 자살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 37조 2항에 따른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으로 판정했다. 이는 간호사 자살사건 중 최초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사건이다.

1년 전 2018년 2월 15일, 설날을 하루 앞둔 그 날 꽃 같은 청춘 하나가 하늘로 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바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자살’이 그것이다. 그것과 같이 수면위로 떠오른 단어 하나, 바로 ‘태움’이었다.

사람을 하얗게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은 부끄럽게도 간호문화라고 할 정도로 간호계에 만연해 있다. 그 태움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간호사의 인력부족’이다. 간호사들은 그 맡은 업무에 비해서 언제나 인력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간호사가 병원에 들어와서 트레이닝을 받는 그 기간을 기다려주기가 힘들다.

보통 신규 간호사는 입사해서 2달을 트레이닝을 받고 바로 독립을 한다. 독립을 한다는 말은 한 명의 간호사로서 일을 한다는 뜻이다. 트레이닝 기간에는 프리셉터라는 보호막이 있지만 독립한 후에는 그 보호막이 없어진다. 모든 일이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이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을 한다.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간호사는 업무 특성 상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한다. 아직 간단한 업무도 손에 익지 않은 신규 간호사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저 신규 간호사가 아직 업무가 익숙치 않고, 이 모든 상황이 그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병원의 업무는 늘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것이 병원의 업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뛰라고 말하는 것이 억지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인데 사실상 병원에서는 늘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전력질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걸으면서 다리에 근육이 생겨 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 박선욱 간호사도 이러한 과정을 겪어왔으리라 짐작한다. 게다가 중환자실이라는 업무환경은 그녀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녀의 가족의 말에 따르면 2017년 9월에 입사한 그녀는 6개월 동안 몸무게가 13kg이나 빠졌다고 한다.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잠들지 못하는 환경에서 계속되는 정신적 압박감은 그녀의 몸을, 그리고 마음을 서서히 말라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위한 사진입니다. 출처:Pixabay
이해를 돕기위한 사진입니다. 출처:Pixabay

사실 간호사의 자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2006년, 2015년, 2016년, 2018년, 201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호사들이 있었다. 이마저도 대한간호협회나 병원간호사협회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저 숫자가 끝인지, 아니면 숨겨진 죽음들이 더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왜’ 간호사들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다른 직업군에서도 업무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호사처럼 꾸준한 경우는 없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적인 문제이다. 간호사에게는 간호 본연의 업무 외에도 자잘한 업무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없는 인력에 다른 업무까지도 해야 한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간호사의 인력충원과 간호 업무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간호사의 심리적인 부분이다. 사람들은 간호사가 자살을 선택했을 때, ‘그냥 그만두면 되는 것을 왜 아까운 선택을 했느냐’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간호사가 아니어서 모른다. 병원을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저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에서 나 하나가 빠지면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 우리는 알기 때문에 사직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필요 이상으로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집단이 바로 간호사 집단인 것 같다. 그들의 필요 이상으로 강한 책임감과 인내심이 결국 그들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간호사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 준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규 간호사도, 기존 간호사도 누군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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