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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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저울이라는 말을 아는가? 백명의 사람이 백명의 무게를 다르게 가지고 있기에, 배려의 저울은 항상 이쪽 저쪽 기울어 지기 바쁘다. 필자는 이 배려의 무게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무게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기에, 또한 그 크기가 천차만별이기에, 늘 저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게 된다.

오늘은 특히나 고부갈등의 저울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고부갈등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이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회복되기 힘든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복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모두가 행복 할 수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노력하면 고부갈등이라는 저울을 균형 있게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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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배려의 저울을 모든 일들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안부전화를 예로 들면 며느리의 저울엔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의 부모님께서 우리의 안부를 궁금해 하시니까’ 라는 배려가 담겨있다. 시댁어른들의 저울에는 ‘바쁘고 힘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부전화를 해주니 고맙다’ 라는 배려가 담겨있다. 며느리의 저울에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의 무게가 실리고, 시댁어른들의 저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다’ 라는 마음의 무게가 실린다. 여기서 기울기의 정도가 차이가 난다. 이유는 바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에는 힘듦이 추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힘듦이 계속 되거나 더해지는 경우는 배려의 무게가 버거워 지기에, 포기하고 싶어진다. 결국 저울은 균형을 잃고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고마움에는 힘듦이 덜하다. 오히려 더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의 무게에 더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안부전화가 불편한 것을 몰랐다면 지금 이순간 인지하고 배려해주면 될 것이고, 불편한 건 알지만 며느리이기에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배려의 저울을 생각하고, 저울이 끊어지기 전에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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