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환경을 초월해서 성공한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
[기자칼럼]환경을 초월해서 성공한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
  • 이두용 동기부여 전문기자
  • 승인 2019.03.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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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배고픔과 처절함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서 현실을 이겼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지금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실수는 실수일 뿐

빅뱅 '거짓말', '마지막 인사', 손담비 '미쳤어', 렉시 '하늘 위로', '눈물 씻고 화장하고', AOA '심쿵해'라는 노래를 아는가? 지금 2030세대라면 모두 아는 노래일 것이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그 유명한 ’용감한 형제(그의 진짜 이름은 강동철이다)‘다.

용감한 형제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범생이었다. 수학,  과학, 독후감 경시대회 상은 모두 탔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엇나갔다. 싸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부와 멀어졌다. 고1 때는 큰 싸움을 하고 소년원에 수감 됐다. 2년 후 보호관찰에서 풀려난 뒤로 술집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잘못된 길이라는 후회를 했고 소주 10명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다. 자해도 했다. 

잘못된 선택/출처:픽사베이
잘못된 선택/출처:픽사베이

얼마 후 용감한 형제는 같이 일하던 직원이 가져온 '사이프레스 힐'의 CD를 듣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못 할 것이 없다는 각오를 하게 됐다. 그는 2000년 술집 영업부장을 그만뒀다. 만 21살이었다. 서울 망우리에 월세 10만 원에 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각종 음악 장비와 음악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할 수 있는 종로 낙원상가를 매일 갔다.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조금씩 빌려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70만 원짜리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10만 원짜리 신디사이저를 구했다. 

용감한 형제는 악보를 볼 줄 몰랐다. 코드 공부를 해본 적도 없었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매일 골방에 틀어박혀 건반을 눌러보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비트를 만들고 편곡을 했다. 그는 입에 풀칠도 못하고 살 때가 많았다. 주머니에는 천원이 있었고 그 돈으로 하루를 버텼다. 막노동을 하면 하루 일당 3만5000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1주일을 버티기도 했다.

형제로 결성된 힙합 듀오 '용감한 형제'/출처:픽사베이
형제로 결성된 힙합 듀오 '용감한 형제'/출처:픽사베이

2년의 노력 끝에 친형과 함께 ‘용감한 형제’라는 이름의 힙합 듀오를 결성했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기획사에 뿌렸다. 여러 기획사 가운데 YG에서 연락이 왔다. '도라이’, ‘골 때리는 이야기’, ‘방아쇠를 당겨’라는 곡들을 준비했다. 기획사에서는 독특하지만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해 데뷔를 시키지 않았다. 어느 날 YG 대표가 용감한 형제에게 "가수 말고 프로듀서로 바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용감한 형제는 음악을 너무 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수락했다.

용감한 형제는 이제 K-팝을 대표하는 히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가 됐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400여 개에 이른다. 수많은 히트곡으로 음원 수입으로만 수백억 원을 벌었다. 그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목표를 향해 오늘도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마지막 목표를 알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성공하면 마지막에 모두 나누는 거였습니다. 오랫동안 가난했습니다. 돈을 번 이후에 좋은 집도 샀고 좋은 음식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활을 해보니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요. 이 대목에 ‘행복에 겨운 소리 하네’라는 반응을 보이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행복해질 때를 곰곰이 고민해보니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눠주는 데 있더군요. 그래서 1,000억 원 이상을 현찰로 모아 20년간 밥으로 기부하겠습니다.
 

용감한 형제의 목표는 밥 기부/출처:픽사베이
용감한 형제의 목표는 밥 기부/출처:픽사베이

한 대당 500~1,000인분의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밥 차 30대를 사들일 겁니다. 한대에 500인분만 나와도 1주일에 1만5000인분, 한 달에 6만인분입니다. 1년으로 하면 80만 명, 20년을 하면 최대 2,000만 명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대상은 독거노인,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입니다. 제 인생 마지막 꿈이 대한민국 국민의 30%에게 번 돈으로 밥을 한번 나눠 드리는 겁니다. 사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잖아요. 칭찬받으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지금 밝히는 이유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약해지면 안 되니까요. 꼭, 꼭 실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르면 50세에 음악 사업을 접고 70세까지 20년간 밥 봉사만 하며 모은 재산을 모두 소진할 겁니다. 70세 이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혼자 노후를 보낼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요.”

용감한 형제 강동철, 어린 시절 소년원에 갈 정도로 문제아였고 학교로 돌아갈 수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 잘못된 길로 가면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 인생길이다. 인생길은 한 번 지나가면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그 길은 후진이 안 되고 오직 전진만 된다. 용감한 형제의 길이 그런 길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길, 되돌아갈 수 없는 길, 되돌아갈 곳이 없는 길이었다. 

이런 인생길에서 용감한 형제는 15,000원짜리 음악 CD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꿈이 그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지금은 큰돈을 벌고 유명한 프로듀서가 돼서 지난날 아무 어려움도 없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 이야기처럼 다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환경을 바꾸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는 배고픔과 처절함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서 현실을 이겼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지금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있다. 과거에 실수한 환경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환경에 지배당할 이유가 전혀 없다.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고 말한 마일스 힐튼 바버가 장님으로 모든 일을 해낸 것은 환경에 지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환경을 지배하자. 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성공한 사람으로 승리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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