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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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가까이 사는 시댁식구들과 저녁을 먹자고 한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가까이 사는 시댁식구들과 저녁을 먹자고 한다. 갸우뚱 했지만 그러자고 했다.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가까이 사는 시댁식구들과 저녁을 먹자고 한다. 연속 삼 일은 아닌 것 같아. 신랑에게 양해를 구했다.

첫번째날은 외식이었고, 두번째날은 집밥이었다. 첫번째든 두번째든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이제 막 결혼을 시작 한 우리로서는, 모두가 이 자리를 불편해야 하는데, 나만 이 자리가 불편한 것이 더 불편했다. 일단 신랑에게 서운하다. 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느껴지니 더욱 더욱 서럽기만 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시댁어른들의 말이 서러움의 정점을 찍는다. “집도 가까운데 자주 밥 먹으면 얼마나 좋냐, 외식은 괜히 돈 쓰는 일이니, 앞으로는 집으로 와라, 밥도 내가 다 차리고, 치우기도 내가 다 치울 테니, 그저 먹고만 가라” 상당히 배려해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하나하나 해석해 보면 가까이 사는 것부터가 갈등의 서막이 됨을 알리는 신호이자, 앞으로 나의 퇴근 후 의 자유는 보장되기 힘듦을 의미 한다.

만약, 이런 말을 결혼 후 5년이상이 되었거나 10년쯤 되었을 때 들었다면, 그 동안의 시댁어른들과의 유대관계가 형성이 되어있을 시간이 충분하기에, 그만큼의 마음을 전해 받아서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신혼 초, 신랑과도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데, 시댁어른들과의 관계 또한 당연히 어렵고 불편할 때이다. 입장 바꿔서, 나의 부모님이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매일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한다면, 사위된 입장에서 마음이 마냥 편할까? 그렇게 하자고 할까? 아마 딸인 내가 먼저 잘라 냈을 것이고, 내 신랑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오히려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매일 밥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가 한달 즈음 되었을 때, 이제는 밥 소리만 나와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는 퇴근 후 신랑과 오롯이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우리 둘이 갖는 신혼의 달콤함 보다 시댁식구들과 함께 하는 불편함이 더 잦아졌고, 그만큼 신랑과 나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시댁에서는 “집도 가까운데, 자주 보면 얼마나 좋냐, 밥만 먹고 가라고 하지 않느냐, 설거지도 안 시키는데 왜 안 온다고 하는 거냐” 라는 소리가 나오고, 신랑 입에서는 “엄마가 해준 음식이 맛이 있다. 음식 차리는 것도 엄마가 하고, 치우는 것도 엄마가 하는데, 금방 밥만 먹고 바로 오자” 라는 소리가 나온다.

“여보, 나는 처음에 시댁에서 우리 집 가까이 이사를 온다고 하기에 ‘가까이 살면 좋지 뭐’ 라는 생각을 했어,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가까이 사는 게 정말 좋지 않은 거다 싶어. 가까이 살지 않았으면 같이 밥 먹자는 소리도 없었을 거고, 그럼 우리가 이렇게 매번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니야. 어떻게 생각해? ‘자주 보면 얼마나 좋냐’ 라는 말. 자주 보면 누가 좋은 건데? 나는 자주 보는 거 안 좋아. 불편하고 부담스러워. 도대체 누가 좋은 거야? 여보 부모님이랑 여보만 좋은 거야? 그럼 앞으로 셋이 만나. 나는 이제 불편하고 힘든 자리 그만할래. 왜 그 누구도 내 배려를 안 해주는 거야? 여보가 중간에서 내 생각해주고 내 배려 해주고 내편에서 생각을 해줘야지 안 그래? 나는 퇴근 후에, 여보랑 둘이 술 한잔 하면서 우리 둘 이야기 하는 게 좋고, 주말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게 좋아. 주말에도 꼭 같이 저녁 먹자 하시면, 나는 언제 쉬어? 굶어도 내 집이 편하다고 내 집이. 밥 안 먹어도 되니까 그냥 내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게 좋다고. 입장 바꿔서 장모님, 장인어른이 여보한테 매일 밥 먹자, 주말에도 밥 먹자, 가까운데 얼굴 자주 보자 그러면 여보는 어떨 것 같은데?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 했어?”

며느리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않는 건지, 불편함을 알면서도 참으라고 하는 건지, 둘 중 어떤 것이 이유가 되더라도, 둘 다 허용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배려해야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존중해야 모두가 존경 받는다.

굶어도 내 집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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