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나이 드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곰과 두 친구’는 아주 절친한 두 친구가 산길을 걸어가다 곰을 만나, 한 친구는 나무위로 올라가 몸을 피하고 다른 한 친구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척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가있다. 사진:픽사베이

이솝우화 곰과 두 친구는 아주 절친한 두 친구가 산길을 걸어가다 곰을 만나, 한 친구는 나무위로 올라가 몸을 피하고 다른 한 친구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척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가있다. 이 우화의 교훈은 위기가 닥쳤을 때 혼자 도망가는 친구는 참된 친구가 아니다이다. 하지만 오늘 필자는 이 이야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교훈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시골에서는 공벌레를 자주 본다. 공벌레는 쥐며느리의 일종으로 돌 밑이나 축축한 낙엽 더미에 산다(*). 필자의 고향 집엔 유독 나무가 많았는데 특히 감나무가 8그루 있었다. 사진:Wikipedia

시골에서는 공벌레를 자주 본다. 공벌레는 쥐며느리의 일종으로 돌 밑이나 축축한 낙엽 더미에 산다(*). 필자의 고향 집엔 유독 나무가 많았는데 특히 감나무가 8그루 있었다. 마당 가득히 쏟아져 내린 감나무 잎사귀를 쓸다보면 공벌레를 쉽게 발견하곤 했다. 그 회색빛 마디 많고 발이 많이 달린 녀석들은 제 몸에 뭔가 닿기라도 하면 즉각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밌어 움직이면 건드리고, 또 움직이면 건드려서 공처럼 말린 모습을 관찰하곤 했다.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곰을 만나 미처 피하지 못했던 친구도,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았을 때의 공벌레도 모두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몸을 죽은 척 위장한 것이다. ,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 움직임이 없게 하는 것은 모두 죽음에 가까운 모습이다.

따라서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좀 쉬세요. 천천히 움직이세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라는 말은 모두 뇌쇠(老衰)를 조장하는 말들이다. 이런 말은 의욕과 에너지를 감퇴시키고 주춤하게 만든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운이 빠지고 무기력해지며, 때로는 내가 무용(無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자존감까지 낮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어 신체활동이 감소하면 건강한 생활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의 뼈는 주기적으로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거나 강한 힘을 받지 않으면 약해진다.

근육은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해주지 않으면 약해지거나 반응력이 떨어진다. 뇌세포 또한 의식적으로 몸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활동을 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노화된다. , 인간의 신체가 약해지고 노쇠하는 현상은 노화때문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 신체활동을 멈추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노화나이 드는 것이 동의어가 아닌 이유다.

처음에 가만히 누워 팔다리만 허부적대던 아기가 일단 뒤집기를 시작하게 되면 다시 뒤집지 못해 얼굴이 벌개지도록 계속해서 몸을 뒤집는다.  사진:픽사베이

 

인간의 성장성숙의 과정을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가만히 누워 팔다리만 허부적대던 아기가 일단 뒤집기를 시작하게 되면 다시 뒤집지 못해 얼굴이 벌개지도록 계속해서 몸을 뒤집는다. 배밀이를 하다 기어다니고 혼자서 앉거나 붙잡고 서서 일어나고, 마침내 걷게 된다. 허리를 세우고 걸을 수 있게 된 인간은 다시 기어 다니는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렇듯 인간의 성장의 과정을 살펴보면 전진은 있어도 후퇴는 없다.

성장이 다 이루어진 후에는 자연스럽게 성숙의 과정이 뒤따른다. 성숙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낸 성장의 결과물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깊게 완숙해가는 배움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사람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이였을 때의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들처럼 구르고 뛰어내리지도 않고, 팔딱팔딱 뛰어다니길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처럼 사소한 자극에도 깔깔거리며 웃거나 종달새처럼 재잘대지 않고, 생동감 넘치게 탐험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필요한 유용한 능력을 습득하자마자 그것들을 사용하기를 멈춘다. 성공한 어른들의 모습은 마치 아이 같지 않은’ ‘젊은이 같지 않은모습으로 받아들여 우리가 어린 시절, 아이였을 때 하던 행동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움직임과 활동력 자체가 저하되고, 생기를 잃어간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활동을 저장하고, 기억목록에서 과거의 경험과 특정패턴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특정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 뇌는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에 따른 대가로 우리는 감각운동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가족모임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누군가는 더 많이 움직이고 누군가는 덜 움직이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가족모임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누군가는 더 많이 움직이고 누군가는 덜 움직이게 된다. 이때 젊은 사람이 마땅히 더 움직이는 게 도리이겠으나 자기 살림이 아니고 익숙치 않은 경우에는 자연스레 살림살이에 익숙하고 먼 곳에서 온 자식과 손주를 직접 챙겨주고 싶은 노모들이 더 자주 부엌으로 드나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입장차이로 인해 서로 불편한 감정과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소매틱스 관점에서 다시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임이 있다!’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진짜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위하는 길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줄이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행위이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라는 말 대신 꾸준히, 움직일 수 있는 한 최대한 움직이세요!”라는 말이 더 필요한 말이지 않을까.

*출처 : 위키백과

본 칼럼은 Thomas Hanna의 이론에 근거하며, ‘노화시계를 되돌리는 자세혁명 소마틱스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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